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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몰카 어른, 피투성이 청소년 / 이재명

등록 2017-09-10 18:21수정 2017-09-10 21:40

이재명
디지털 에디터

최근 알려진 여중고생들의 집단 폭행 사건에서 내가 받은 충격의 크기는 폭력의 잔혹성보다 가해 학생들의 무감함이 더 컸다. 청소년 폭력의 심각성이나 빈도가 예전보다 잔인해지거나 잦아졌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다. 다만 내 눈에 비친 두드러진 차이는 요즘 청소년들이 자신의 비행을 되도록 감추고 쉬쉬하던 과거와 달리 드러내고 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데 있다.

철부지 아이들이라고 아예 죄의식이 없지는 않을 터이다. 주변에 있는 또래 학생들에게 이런 심리의 저변에 무엇이 있냐고 물었더니 ‘과시’라고 했다. 가해 학생이 “어차피 다 흘러가, 나중에 다 묻혀” “팔로 늘려서 페북스타 돼야지”라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의 청소년이 더 포악해진 게 아니라면 폭력에 대한 죄책감보다 과시욕이 앞서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

이제 청소년 세대에게 디지털 기기는 분리될 수 없는 존재다. 몇분에 한번씩 스마트폰을 확인해야 하고 또래나 가족과의 소통도 거의 전적으로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의존한다. 누군가와 연결되고픈 강렬한 욕망은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는다. 아날로그 시대엔 그 연결이 ‘일대일’ 또는 많아야 한 사람이 수십명을 상대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디지털 네트워크의 발달은 ‘1 대 무제한’의 관계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뒤집어 보면 ‘무제한 대 1’의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는 뜻이 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손쉬운 방법이 공격성과 자기애를 드러내는 것이다. 에스엔에스에서 이뤄지는 대화 주제나 내용이 오프라인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과시적인 것도 여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죄의식을 억누르는 과시욕은 디지털만의 고유한 소통방식과도 무관하지 않다.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릴 필요가 없는 일방적인 에스엔에스 소통은 공감능력의 저하가 불가피하다. 음성이 아닌 문자, 말이 아닌 키보드가 얼굴을 마주한 친구의 표정이나 전화통화로 들리는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감정 변화까지 읽어낼 수는 없다. 실제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탈감각화 효과’가 젊은이들의 공감능력을 10년 전보다 40%나 감소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변화는 주변에서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언젠가부터 옆자리 동료마저도 카톡과 텔레그램으로 말을 건네고 있다. 비록 ‘아무말 대잔치’라 해도 웃고 떠들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서로 느낌과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때에 비해 소통의 깊이나 공감대는 그만큼 줄었다.

이렇게 보면 빠른 속도와 편리한 접근, 방대한 정보라는 디지털의 장점이 깊은 사색, 집중력, 관계의 긴밀도와 같은 아날로그의 장점을 희생시킨 셈이다. 휴대전화가 등장한 뒤 가까운 지인의 전화번호마저 외우지 못하게 됐고, 스마트폰의 편리한 검색기능이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기억과 지식을 두뇌에서 지우고 있는 것처럼.

공감능력 역시 ‘디지털 희생양’의 예외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덫 안에 갇힌 이들은 청소년에 국한되지 않는다. “몰카 시청은 살인”이라는 피해자의 호소 따윈 안중에도 없이 어른들은 에스엔에스를 통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음란물을 보고 공유한다. 범죄로 만들어진 동영상을 시시덕거리며 돌려 보는 어른들의 행태가, 피범벅이 된 피해자의 사진을 자랑스레 공유하는 여중생의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날려대는 문자와 사진, 동영상이 누군가에겐 정신적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무감한 어른들이 어떻게 가해 여중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청소년 폭력을 엄벌로 대처하자는 어른들의 행태가 지금의 에스엔에스 세상만큼 즉자적이고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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