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디터 연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한테 담당 학과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넌 왜 연대밖에 못 나왔니? 왜 그렇게 공부를 안 했니?” 서울대 의대나 연세대 의대나 둘 다 최고의 의대라고 생각하는 보통사람들이 보기엔 위화감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 말을 직접 들은 의사로서는 인생이 송두리째 무시당하는 언어폭력이었을 것이다. 서울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의 커트라인은 요즘 수능 점수로 보면 불과 몇 점 차이가 날 뿐이다. 이 정도의 점수 차이로 의과대학 전체, 혹은 한 사람의 의사를 평가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학과장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를, 이명박 정부 말기에 방영된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서 찾을 수 있다. 사교육에 반대하는 아내 윤서래(김희애)를 향해 남편 한상진(장현성)이 소리친다. “다양성의 시대니 뭐니 하지만 인간은 딱 두 부류야. 갑과 을. 누구도 바꿀 수 없어. 인간 세상의 속성이야. 나는 내 아들이 갑이면 좋겠거든?” 서울대 학과장은 한상진처럼 갑으로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갑이 되어 ‘갑질’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 기득권층에는 이 학과장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들의 뇌리에는 일종의 ‘보상의식’이 터를 잡고 있다. 자신이 받는 사회적 대우나 연봉 등이 모두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한 데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틈만 나면 그 차이를 부각해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려 든다. ‘변별력’이 갑질의 기초가 됐을 뿐 아니라, 봉건 계급을 대체하는 새로운 계급차별의 기제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학벌사회와 입시경쟁의 폐해에 대해 더 논하는 건 지면 낭비일 것이다. 문제는 이 익숙한 ‘적폐’에 너무나 오래 길들어서 문제의식조차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한때는 그래도 ‘미친 경쟁교육’을 강요하는 사회의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일말의 죄책감과 미안함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 다들 자포자기한 듯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그 시기가 이른바 386들이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시작한 시점과 관련이 있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대체로 노무현 정부 말기에서 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던 시기부터다. 이명박 정부의 경쟁 이데올로기 공세에 밀린 탓도 있지만, 이 사회의 진보는 교육문제에서 스스로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별로 달라질 건 없는 것 같다. 오는 31일 수능 절대평가 확대방안 최종 발표를 앞두고서도 ‘변별력’ 걱정이 먼저 들린다. 수능 절대평가 확대는 원래 수능의 변별력을 떨어뜨려 학생부 위주로 대학입시를 재편하려는 사회적 합의가 깔린 정책이다.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한 모든 주요 후보가 수능의 자격고사화를 공약으로 내건 맥락과 이어져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수능 변별력 하락을 우려해 수학과 국어를 뺀 1안으로 적당히 봉합하려 한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대학서열체제라는 출구를 그대로 둔 채 입시정책이라는 입구만 리모델링하는 데 그쳐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입시정책을 뜯어고쳐본들 서울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 사이의 서열을 변별력이라는 이름으로 인정하는 한 입시 과열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고착화된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로 불필요한 교육경쟁 격화, 창의성을 기르지 못하는 주입식·암기식 교육, 꿈과 끼를 살리지 못하는 불행교육, 지나친 사교육 부담.” 2015년 새누리당 시절의 여의도연구원이 낸 <시대 변화에 따른 대입제도 개선방안>이 지적한 우리 교육의 문제점들이다. 개혁 공감대는 이미 충분하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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