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그래서 장차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누가 물어온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다들 그런 꿈을 꾸고는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갑작스레 전직 대통령이 파면되고 새 대통령을 뽑은 지 몇 달이 되어간다. 다들 참을성이 큰 탓일까. 대통령을 몰아낼 만큼 대단했던 기세는 변화를 향한 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듯싶다. 다들 팔짱을 끼고 일단 지켜보자는 심산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해도 그간 쌓였을, 변화를 향한 기대가 무엇인지 아직도 아리송하기만 하다. 우리는 무엇을 원했던 걸까. 그 꿈 속엔 어떤 세계가 있었던 것일까. 꿈이란 것이 무엇인지 또 그런 것이 오늘날 남아 있기나 한 것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어렸을 적, 동화에서 읽는 주인공들의 휘황한 꿈은,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어느 나라 이야기건 주인공이 꾸는 꿈 속에는 항상 같은 낙원이 숨어 있었다. 소금에 절인 고기,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빵과 과자, 흘러넘치는 꿀. 나는 아직도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두 남매를 꾀어낸 황홀한 유혹이 과자와 사탕으로 지어진 집이라는 것을 잊지 못한다. 심지어 쥘 베른의 소년소설인 <해저 2만리>를 읽을 때마다 나는 네모 함장의 위엄과 노틸러스호의 눈부신 활약 못지않게, 쇳조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고래 같은 잠수함의 선원들이 즐긴 풍성한 음식들에 대한 묘사를 잊지 못한다. 먹는 게 시원찮다고 언제나 핀잔을 듣던, 입 짧은 어린 소년이었던 내게, 왜 그 환상의 음식들이 기억에 또렷한지 모를 일이다. 이제는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티브이(TV) 채널을 돌리면 어디에서나 음식 프로그램을 마주하게 된다. 아주 별난 미식 취미를 지닌 이들이 즐기는 특별한 음식을 제외하곤 사람들은 대개 그냥 먹고 살았을 것이다. 그것은 고민해서 선택하거나 먹어본 적이 없는 것을 먹는 게 아니라 마치 제2의 자연처럼 습속의 세계에 깊이 파묻혀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거의 모든 일이, 라이프스타일이란 말이 가리키는 것처럼, 선택하고 다듬고 모방하고 배척해야 하는 스타일이 된 바에야, 먹는 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맹렬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이 달리 없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잘 먹는 것, 그것이 우리가 꾸는 꿈의 전부가 된 듯싶다. 그저 먹는 것 따위에나 정신이 팔려 있다고 누군가는 푸념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푸짐하고 기분 좋게 먹는 것은 언제나 행복의 총화였다.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에서처럼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지금과 다른 세상을 향한 꿈의 무대엔 언제나 푸짐한 식탁이 자리하고 있었다. 행복한 세상을 향한 꿈을 꾸는 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그려내기 어려울 때 아니 자신이 꿈꾸는 세상의 이미지가 빈약할 때 그 꿈은 어쩌면 지금 당장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포만을 향한 꿈으로 상징화되는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좋았던 과거에 대한 꿈은 <한국의 맛>으로, 망가진 일터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꿈은 <삼시세끼>로 치환되어 나타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대중문화의 통속적인 “먹방”은, 낙원을 원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대체품일 것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어떻게 꾸어야 할지, 그 꿈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는 이들에게, 여전히 꿈이 남아 있음을 암시하는 작은 조각이 한 접시의 음식이라면, 그건 매우 슬픈 일일 듯싶다. 그 꿈을 해결할 곳은 정작 정치여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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