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하릴없이 들어간 ‘예스24’의 서핑 첫 목에서 번쩍 띄는 제목이 나왔다. <미국의 반지성주의>, 바란 대로 저자는 리처드 호프스태터. 아, 이 책! 나는 곧바로 주문했고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아니, 그 책으로 들어가기 전, 1971년 <문학과지성> 봄호에 게재한 나의 ‘지성과 반지성’을 먼저 펼쳤다. 그리고 1970년대로 들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 독재 권력을 위해 유신체제를 구축해가는 장면을 보며 내가 할 수 있었던 시국 비판의 46년 전 글을 읽었다. 그 글을 쓸 때 큰 도움을 준 책이 이번에 <미국의 반지성주의>로 번역된 호프스태터의 <미국인 생활에서의 반지성주의>였다. 아마 외지의 서평란에서 보고 재미 시인 마종기에게 부탁해 받았을 그 책에서 나는 내가 발언해야 할 개념을 발견했고 여기서 ‘지식인’(intelligent)과 ‘지성인’(intellectual)을 구별하며 교수, 언론인, 작가 등 이른바 지식인으로서 권력으로 유인당해 들어가는 작태를 힐난했다. 그 뜨거웠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내 30대 초의 글이 이 책을 많이 흉내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 없이 미소 지으며 읽는 <미국의 반지성주의>(유상은 옮김, 교유서가)는 미국 역사학자 호프스태터가 1963년에 상자하여 퓰리처상을 받은 명저로, 미국 역사에서 반지성주의의 맥락을 면밀하게 짚어내 매카시즘의 후유증을 앓던 미국 지식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그는 지식인을 “아주 좁고 직접적이며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적용되는 두뇌의 우수함”으로, 지성인을 “두뇌의 비판적이고 창조적이고 사색적인 측면”으로, 요컨대 지식인은 질문에 해답을 주는 사람이고 지성인은 그 해답을 질문으로 바꾸는 사람으로 구별한다. “원칙적으로 지성은 실용적이지도, 비실용적이지도 않다. 말하자면 초실용적이다.” 호프스태터는 범용성을, 그래서 대중성을 주축으로 한 미국인의 삶에서 종교적 복음주의와 신대륙의 개척으로 형성된 마초 같은 ‘야성주의’(번역서는 ‘원시주의’로 옮겼는데)가 뿌리를 이룬 반지성주의가 자본주의 기업의 실용주의에 힘입어 더욱 강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 설명을 다시 보며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 반지성주의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탐색은 호프스태터와 비슷한 세 줄기로 갈라졌다. 신학자 유동식 교수와 철학자 최정호 선생이 지적하듯이 어떤 종교든 한국에 들어오면 샤머니즘화하여 기복신앙으로 타락하는 현상이 그 먼저다. 죽어서 천당이나 극락에 가리라는 소망으로부터, 목사 소설가인 백도기의 소설에 나오듯 장로가 공장을 세우고 굿과 다름없는 예배를 보는 일까지 오늘의 종교계 일상에 깊이 밴 기복 심리의 바닥에서 지성이 활동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다음은 이념적 도식성이다. 한국전쟁과 분단이 심어준 정신적 경직성인데, 반정부적이란 이유로 이웃 아주머니에게서 ‘빨갱이’로 지목된 적이 있던 내게 오늘의 반지성적 풍토를 주도하는 것이 이 도식적 이념주의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환경, 빈부 격차, 실업 등 어떤 이유로라도 진보적이거나 비판적이면 좌파이고 그래서 용공주의자이며 따라서 빨갱이가 되고 주사파-친북파가 틀림없다는 유보 없는 심판이 내려진다. 지난 선거에서도 상대 후보가 공공연히 이 논리로 다른 후보를 종북파로 몰아 공격하는 것을 보고 유신체제가 붕괴된 지 한 세대를 훌쩍 넘었는데도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의 여전한 기세에 어이없어했다. 세번째로 들고 싶은 것이 세속주의랄지 출세주의랄지 속류자본주의랄지, 그 모두를 합한, 호프스태터가 말한 실용주의적 현실주의다. “부자 되세요”란 인사로부터 학벌, 문벌, 지연에서 시작되는 이 현실기회주의는 우리 선비문화에서 볼 수 없었던 오늘의 우리 행태와 심리 구조에 음습한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미국인의 실용주의와 차원을 달리하는 천박한 세속주의일 뿐이다. 소외감의 상실을 안타까워하는 호프스태터가 “사회로부터 점차 인정받고 편입되고 활용됨에 따라 그저 체제에 순응하는 존재가 되어 창의성과 비판 정신을 지닌 참으로 유용한 인간은 사라져간다”며 한탄하는 데 공감하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절망할 때는 아니라는 희망을 캐내고 싶었다. 마침 그럴 의도 없이 잇달아 읽은 세 권의 자서전과 평전이 내 희망을 일구고 있었다. 박근원의 <여해 강원용 목사 평전>, 황석영의 두 권짜리 자서전 <수인(囚人)>, <문재인의 운명>이 저기압의 내 심정을 돋우어준 반지성에 저항하는 생애였다. 강원용 목사는 개인적으로 뵙기도 하고 그분의 행사에 참여한 바도 있지만 나는 그의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대화 운동에 깊이 공감해왔다. 나약한 크리스천 기질을 강자의 기독교로 반전시킨 강 목사는 천국이나 부활을 말하는 대신 “절대 선이나 절대 악, 그리고 극단적인 이분법”을 극복하는 “종교간의 심층적 이해와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교회의 세습까지 노리는 오늘의 목회자 몰골 속에서 그래도 우리 사회의 양심이 격려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강 목사의 이런 비판적 종교 운동 때문이었다. 소설가 황석영은 그의 초기 작가 시절부터 알아왔고 그의 대작 <장길산>에 대해 감탄하는 글을 쓴 적도 있지만 그의 속내와 최근의 일들을 알게 된 것은 회고록 <수인> 덕분이었다. 그는 제도 교육을 벗어났고 <삼포 가는 길> <객지>의 주인공들처럼 공사판을 떠돌며 뜨내기 생활로 정상적인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 당당히 아웃사이더의 길을 밟는다. 그래서 문득 평양에서 김일성과 만나고 독일과 미국을 떠돌며 국제적 지식인들과 교제하고 현장의 문화운동가들과 작업하고 광주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오랫동안 감옥살이도 했다. 그는 자신이 식사와 글쓰기만 빼고 일상적으로는 ‘왼손잡이’라고 고백하는데 그 때문에 “오른손잡이를 위한 물건들과의 불화를 통해서 세상과 사물을 다르게 보는 방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나는 쫓겨난 자가 아니라 거부하고 스스로 나온 자”의 삶과 정신을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본 한 편의 회고록에서 가장 많은 실명인사들과의 관계를 보면서 여기서 왜곡된 세계와 그 안에 갇힌 상투적 삶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열리고 권력에 저항하는 인물의 창조가 가능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개인적으로나 글로나 전혀 모르면서 느낀 호감의 실속을 채우기 위해 읽은 <문재인의 운명>에서 우선 다른 정치인 경제인들과 달리 허세 없이 “가난이 내게 준 선물로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워온” 그의 그리 특별할 수 없는 생애에 정직한 것이 고마웠다. 무엇보다 인권과 노무현과의 관계에서 ‘운명’을 자각하는 것이 아름다웠다. 그 운명은 한스러움에서 빚어진 체념이 아니라 “통렬한 반성과 깊은 성찰”에서 우러난 각성에서 지적 행동을 추스르는 ‘사명의 선택’이리라. 세계란, 그리고 삶이란 지적 성찰을 무디게, 혹은 버리게 만드는 구조이며 인간은 반지성의 공고한 틀에 갇힌 존재다. 그럼에도 가끔은 소외 속에서 질문하고 사유하며 의미를 캐고 진정성을 추구한다. 나는 그 진정성이 고양된 아름다운 촛불 행진을 보았고 거기서 한 세대 전의 역사로부터 우리야말로 ‘지성의 삶’을 추구해왔다는 축복을 발견했다. 내 젊음을 괴롭히던 ‘반지성의 세태’에 대한 가냘픈 항의에서 이제 당당하게 ‘행동하는 지성’을 감축할 수 있게 된 기쁨! 얼마나 오랠지, 너무 낙관적인 건 아닐지 저어하면서, 적어도 지금은, 그 축하를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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