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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화·들·짝] 지구촌 시공간 재구축의 패턴

등록 2017-08-01 18:24수정 2017-08-01 19:09

시공간 재구축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19세 중후반 이후엔 변화의 폭과 속도에서 이전과 큰 차이가 있다. ‘약 20년 간격으로 경제위기와 대전환이 번갈아 다가오며, 경제위기 때는 상당한 질서 변화가, 대전환 때는 큰 질서 변화가 뒤따른다’는 게 그것이다.

지금처럼 모순이 계속 축적되면 2020년대엔 국제질서의 대전환이 불가피하다. 대전환이 어떤 양상을 보일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큰 방향은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약한 고리에서 일어날 폭발이다. 1순위는 여전히 중동 지역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시공간을 갖는다. 그 시공간은 생명체의 삶과 정체성을 규정하지만 동시에 생명체 활동의 영향을 받아 형태가 달라진다. 특히 인류는 지구촌 전체 시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시공간이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오랫동안 미국이 지배하던 공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킨다. 2008년 위기 이래 세계 경제는 지구촌 전역에서 스트레스를 축적하고 있으며, 일자리·이민·난민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다. 박근혜 정부 동안 먼 과거에 머물던 우리나라 시간은 촛불혁명과 함께 21세기에 걸맞은 자리까지 전진했다. 그 와중에 4차 산업혁명의 큰 물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시공간 재구축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틀을 잡고 생산력이 급격하게 높아진 19세 중후반 이후엔 변화의 폭과 속도에서 이전과 큰 차이가 있다. 시공간 재구축의 패턴이 뚜렷해진 것도 이 시기다. ‘약 20년 간격으로 경제위기와 대전환이 번갈아 다가오며, 경제위기 때는 상당한 질서 변화가, 대전환 때는 큰 질서 변화가 뒤따른다’는 게 그것이다.

가장 최근의 경제위기인 2008년 이후 예상하기 어려웠던 일이 잇달아 일어났다. 중동·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그리스 등 여러 유럽 나라가 국가부도 위기로 고통을 겪었다. 선진국에서도 ‘월가를 점령하라’ 등 대중 직접행동이 이어졌다. 위기의 파장은 지금도 계속 중이다. 비주류 부동산재벌인 트럼프의 득세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도 이에 포함된다.

앞서 20년 전인 1989∼90년에는 냉전체제 해체와 소련·동유럽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대전환이 있었다. 20개 이상의 나라가 새로 탄생했고, 발칸반도와 옛소련 지역은 심각한 내전을 겪어야 했다. 미국의 패권이 강화되면서 신자유주의는 지구촌 전체의 규범이 됐다. 서방과 이슬람 과격파 사이의 갈등이 부쩍 심해지고, 북한 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보다 10~20년 전인 1970년대에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석유위기)와 주요국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표현되는 세계 경제위기가 있었다. 복지국가 체제에 대한 서방 나라들의 믿음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중동 분쟁이 새 양상을 띠면서 격화했다. 동아시아에선 4룡(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의 성장이 뚜렷해졌고, 중국은 개혁·개방을 본격화했다.

그 이전의 대전환 계기는 1945년에 끝난 2차 대전이다. 미국·소련 주도의 세계 질서가 구축되면서 서방은 20년 이상에 걸친 안정적 고도성장기를 경험했다. 아시아·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수십 개의 독립국이 생겨나 제1·제2·제3세계라는 구분이 성립한 것도 눈에 띄는 질서재편이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또한 세계사적 변화의 한 부분이다.

이 시기 앞에는 1929년 대공황이라는 경제위기 상황과 1914~18년 1차 대전이라는 대전환 계기가 있다. 대공황 이후 독일·일본 등의 파시즘 강화와 각국의 보호주의 갈등이 이어졌다. 1차 대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오스만튀르크, 러시아라는 네 제국을 해체하고, 러시아·동유럽·아시아·중남미 지역에 두루 각종 혁명의 동력을 제공했다.

경제위기와 대전환은 별개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내적으로 연결되는 동학을 갖는다. 어떤 나라가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형태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내부 개혁, 모순 전가, 폭발이 그것이다. 바람직한 방향은 내부 개혁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힘이 있는 나라는 어려운 개혁보다 외부로 모순을 떠넘기는 쪽을 택하기가 쉽다. 폭발은 내파나 전쟁으로 나타나는데, 대개 개혁과 모순 전가에 모두 실패한 지구촌의 약한 고리에서 일어난다. 이후 대전환을 거쳐 성립되는 새 질서는 일정한 기간 활력을 보인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고유한 운동법칙은 새 위기를 낳는다. 인류는 이런 위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1970년대 경제위기 이후 미국과 서유럽이 신자유주의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은 나름의 개혁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해진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측면과는 별개로, 모순 전가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혁신을 꾀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반면 소련·동유럽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권은 그렇지가 못했으며, 결국 체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모순이 심화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개혁 시도를 마지막으로 소련·동유럽 사회주의권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스스로 내파한 것이다.

1929년 대공황 이후에도 미국과 여러 유럽 나라들은 뉴딜이라는 개혁 정책으로 출구를 모색했다. 동시에 이들은 보호주의 장벽을 치면서 모순 전가를 함께 시도했다. 후발 자본주의 나라인 일본과 1차 대전 패전국인 독일도 비슷한 시도를 했으나 움직일 수 있는 폭이 크지 않았고 모순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 폭발 형태가 2차 대전이다.

19세기 말 지구촌의 선진국이던 유럽 주요 나라와 미국은 경제위기와 국내 계급갈등에 직면하자 자유주의적 개혁과 더불어 식민지 쟁탈전을 강화해 내부 모순의 대외 전가에 나섰다. 당시에는 식민화할 수 있는 지역이 곳곳에 있었기에 이런 해법은 일정 기간 유효했다. 하지만 한반도를 거의 마지막으로 지구촌 분할이 끝나자 상대에게 공격성을 분출하는 쪽으로 출구를 찾았다. 1차 대전이 그것이다.

2008년의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 역시 개혁, 모순 전가, 폭발의 세 가지 선택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개혁이 바람직한 방안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는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 공존공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열쇠를 쥔 미국은 내부 개혁 없이 모순 전가에 몰두한다. 트럼프가 내건 ‘미국 우선주의’는 모순 전가의 다른 이름이다. 중국 또한 개혁에 힘을 기울이기보다 힘을 발산하는 쪽으로 가려 한다. 유럽 나라들은 개혁과 모순 전가에서 나름대로 균형을 잡으려 하지만 동력이 약하다. 지금처럼 모순이 계속 축적되면 2020년대엔 국제질서의 대전환이 불가피하다.

대전환이 어떤 양상을 보일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지만 큰 방향은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약한 고리에서 일어날 폭발이다. 1순위는 여전히 중동 지역이다.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세력의 문제와는 별개로 새로운 큰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난민·이민 문제의 최전선인 유럽과 중동·북아프리카,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경계지역도 취약하다. 동아시아, 특히 중국을 둘러싼 지역이 약한 고리가 될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어떤 경우든 과거처럼 강대국 사이의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세력 전이의 가속화다. 한·중·일과 아세안, 인도 등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가 대전환의 주요 축이 될 것은 확실하다. 지구촌 경제·정치·사회에서 유럽과 미국의 비중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미국의 달러 패권과 군사력의 동향이다. 2008년 경제위기가 미국에서 발생해 지구촌으로 퍼졌음에도 달러 패권은 그대로다. 세계가 불안해질수록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한 자산인 달러를 찾는 경향은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다. 대안이 없는 한 이런 추세가 유지되겠지만 달러 패권이 갑자기 붕괴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셋째는 민주주의와 국가, 그리고 지구촌 전체의 불확실한 미래다. 2030년까지 지구촌 인구는 90억명에 접근하게 된다. 환경 문제와 식량, 물 사정이 더 나빠질 것이다. 이와 관련한 지구 차원의 협력은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결국 각국의 부담을 키운다. 국력과 민주주의가 뒷받침되는 나라는 견뎌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내파의 길이 다가온다.

우리나라에 가장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는 평화통일 여부다. 지금과 같은 분단과 소모적인 대결이 지속할 경우 인구 정체·감소, 성장 잠재력 저하 등과 겹치면서 한반도 전체가 동아시아와 지구촌의 약한 고리가 될 수도 있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김지석 대기자가 지구촌의 변화를 깊고 넓게 분석하는 새 연재 ‘화·들·짝’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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