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팀장 열흘 전 <한겨레>는 제주지검에서 있었던 황당한 일을 보도했다. 제주지검 지휘부가 법원에 공식 접수된 압수수색 영장을 담당 검사 몰래 되찾아왔다는 사실과, 이에 반발한 검사가 대검찰청에 지휘부 감찰을 요구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제주지검은 ‘커뮤니케이션 실수’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그 검사는 일주일 만에 검찰 내부 통신망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려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복잡한 사안도 아닌데 대검은 감찰을 미적거렸다. 그사이 제주지검장은 정기인사를 통해 다른 지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이 공개적으로 이 사건의 철저한 감찰을 약속했으니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이 사건 ‘책임자’들의 ‘무책임한’ 대응도 문제였지만, 정작 곤혹스러웠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사건 내용을 전해 들은 검사들의 ‘사적인’ 반응 때문이다. ‘몰래 영장 회수’까지만 들은 검사들은 “어찌 그런 일이…”라며 혀를 찼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해당 검사는 여성 검사였다. 이를 접한 검사들의 반응이 묘했다. 이번 사안과 관계없는 개인 캐릭터나 정확하지도 않은 평판을 언급하는 검사, 문제 제기 방식의 성급함과 적절성을 문제 삼고 나선 검사도 있었다. “가뜩이나 검찰 조직 전체가 어려운데…”라며 ‘총장급’ 걱정을 하는 이도 있었다. 내부고발자의 품성과 자질에 시비를 걸어, 사안의 본질에 물타기를 하는 아주 오래된 조직 이기주의 프레임이다. 평소 강직하고 정의롭다고 여겼던 검사들조차 이런 반응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껏 검찰을 출입하며 느꼈던 그 어떤 막막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특수부나 기획부서에서 잘나가는 서울법대 출신 남성 검사가 문제를 제기했다면 어땠을까? 남성 중심의 보수적 조직문화가 지배하는 검찰에서, 내가 들은 여성 검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체로 이렇다. “여검사들이 크게 늘어서 아주 힘들어… 일할 사람이 없어”, “늦게까지 남아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지도 않고, 집중도도 떨어져. 오히려 우리가 눈치를 봐야 해.” 물론 검사의 밤샘이 일상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피의자를 불러 같은 질문 반복해가며 밤새 조사해 자백 받아내고, 그게 안되면 또 밤새워 피의자 주변을 뒤져 별건으로 압박하고, 그게 곧 ‘수사 잘한다’고, ‘일 열심히 한다’고 평가받던 조직이 검찰이었다. 그렇게 윗사람한테 좋은 평가를 받고, 선배가 끌어주고 후배가 모시며 잘나가는 엘리트 검사 그룹에 편입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어떤 조직도 과거를 붙들고 살 수는 없다. 개인적으론 공수처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구조개혁보다 여성 검사를 더 늘리고 그들이 약진해 주요 보직에 전진배치되는 게 검찰의 체질을 바꾸는 더 빠른 길일 듯하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청문회 때 “한국 검사들도 이젠 ‘저녁이 있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저녁이 있는 삶’을 실천하고 주도할 이들이 누군지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여성 검사들은 출신 고등학교·대학교로 구획을 나누거나 지역과 기수, 전공별 연줄과 모임을 만들어 조직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기업인 만나 밤늦도록 술 마실 일도 없다. 무엇보다 조직의 잘못되고 낡은 관행을 ‘낯설게’ 볼 수 있다. 조직에서 찍힐까 봐, 또는 선후배와 지연·학연에 얽혀 침묵했던 건 대체로 남성들 몫이었다. 따가운 시선에도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한 제주지검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니 굳세어라, 여성 검사! soulfa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