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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원전 프레임 전쟁 / 한귀영

등록 2017-07-30 20:32수정 2017-07-30 20:36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고 있다. 언론은 각 사의 이해관계와 시각에 따라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가히 프레임 전쟁이다.

이 이슈에는 두 개의 프레임 대결구도가 있다. 첫째, 결정권 문제. 이토록 중대하고 복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정책 사안에서 누가 결정권을 행사해야 하는가? 보수언론의 ‘전문가주의’와 진보언론의 ‘시민참여 민주주의’가 대립한다. 둘째, 공사 중단의 경제적 결과. 보수언론은 세금 부담과 전기료 폭등 등 ‘혈세낭비론’을, 진보언론은 사용후 핵폐기물 처리 비용 등 ‘원전고비용론’을 강조한다.

프레임이란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틀짓는 인식의 구조물이다. 프레임 이론의 주창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 의식이 아닌 무의식적인 과정이며, 이성보다는 감정, 마음과 관련된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각자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어서 이 프레임에 부합하는 사실만을 선택적으로 취하고, 반대의 사실들은 무시한다. 숫자와 사실로 논증을 즐기는 진보진영에 비해 감정과 마음을 자극하는 보수진영의 프레임이 위협적인 이유다.

지금 이 프레임들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전문가주의는 제법 마음을 얻고 있다. ‘원자력과 같이 고도로 복잡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이슈’라는 표현 자체의 힘이다. 이 표현이 사용될수록 ‘비전문가’ 시민 참여의 정당성은 약화된다. 전문가주의는 진영을 넘어서는 폭넓은 믿음이다. 지난 정권 시절, ‘역사는 역사학자에게’를 외치며 국정교과서를 반대할 때 호출된 것도 전문가주의다.

혈세낭비론도 강력하다. 공사 중단이 혈세 낭비,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지리라는 서사는 평소 탈핵을 지지하던 시민들도 멈칫하게 한다. 세금 이슈는 늘 국민 여론의 가장 약한 고리였고, 보수진영은 이를 영악하게 활용해왔다.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폭등 대책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보수진영이 ‘세금폭탄’ 프레임으로 응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심지어 세월호 이슈에도 혈세낭비론이 개입되었다. 주간지 <시사IN(인)>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보수언론이 특조위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을 혈세낭비 프레임으로 공격하자 세월호에 대한 애도 여론도 분열되었다.

조세저항의 심층에는 국가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다. 세금이 헛되이 쓰이리라는 불신이다. 이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데는 무척 긴 시간이 필요하다. 길게 보면 탈핵이 돈이 덜 든다고 설득해봐야 당장의 세금, 전기료 인상이 더 화가 날 뿐이다. 레이코프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 따르면 경쟁자의 프레임 안에서 사실들을 공격하면 오히려 그 프레임만 더 강화된다. 그래서 이곳은 불리한 싸움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승전의 첫째 조건은 자신이 유리한 전장을 고르는 것이다. 다른 프레임 구도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심층의 감정, 마음과 맞닿아야 한다. ‘안심 대한민국’, 이제는 정말 나와 가족이, 이웃이, 미래세대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프레임은 어떨까?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마음의 심층구조에서 자라나고 있는 이 프레임이야말로 이길 수 있는 전장이 아닐까?

병사가 전투를 지휘할 수는 없다. 전문가인 지휘관이 필요한 이유다. 돈 문제가 사소할 리가 없다. 비용편익분석을 하는 이유다. 하지만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돈과 안전 사이에서 선택할 권력은 주권자 시민에게 있다. 이것이 현대의 상식이다.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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