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디터 얼마 전 대중의 분노를 샀던 이장한 종근당 회장의 운전기사를 향한 막말과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의 학교 급식노동자 비하 발언에는 중대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막말과 비하의 대상이 둘 다 최저임금 대상 업종의 노동자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살아가려면 가난과 멸시라는 두 가지 천형을 모두 견뎌내야 한다. 치열한 입시와 취업 경쟁은 이 공포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는 민초들의 본능적인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천정부지로 뛰는 전월세와 상가임대료, 부실한 사회안전망까지 더해지면 가히 ‘헬조선’ 시스템의 완성이라 할 수 있겠다. 갑질의 대상이 최저임금 생활자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한국 자본주의 축적 과정에서 형성된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의 ‘갑’들은 밑바닥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막말을 해도 된다고 교육받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 바탕에는 몸 쓰는 노동을 천시하고 우습게 여기는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공부 안 하면 너도 저렇게 돼’라는 말로 주입되어 온 물신주의와 능력(으로 포장된 학력)주의 말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위력을 떨치는 지배 담론이다. 인간 사회가 물신주의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나는 회의적이다. 다만 완화할 수는 있는데, 그 실마리가 최저임금 인상이라고 생각한다. 물신주의를 완화하려면 사람의 가치가 올라가야 하는데, 그 출발점이 최저임금이라는 얘기다. 돈을 숭배하는 물신주의를 돈으로 극복하자는 게 말이 되냐는 반론에 대해서는 그것이 물신주의를 극복하는 자본주의적 방식이라는 답으로 갈음하겠다. 최저임금은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에 매겨지는 가격의 하한선이다. 그 가격 이하로는 사람을 고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국은 저임금을 바탕으로 수출형 공업국가로 성장해 왔고, 그 관성 탓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지금도 여전히 사람값이 싸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값을 올리는 인권의 문제이며,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일컬어 ‘잠들지 않는 나라’라며, 밤문화를 칭송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다 사람값이 싸서 가능한 것이다. 전화 한통이면 24시간 치킨이 배달되고 대리기사를 부를 수 있는 나라는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지나치게 오래 일하고 남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강요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최저임금 정상화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자영업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유도 사람값이 싸기 때문이다. 영세자영업자들의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려가면서 자가 착취를 한다. 그러다보니 자영업자와 알바의 임금 역전에 대한 우려가 쉽게 나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이나 건물주의 횡포 등은 별도의 제도로 풀어야 한다. 내수산업의 경우 공정거래법과 세법으로 얼마든지 이익 분배를 조정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반발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 방식과 논리의 기시감에 김이 빠져버린 느낌이다. 이미 경영난을 겪고 있거나 국외 이전을 계획하고 있던 몇몇 방적업체를 끌어들여 모두 최저임금 탓인 양 전가하거나, 자영업자와 알바를 이간질하는 등 예의 익숙한 수법들 말이다. 그런데 약발이 예전 같지 않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좀처럼 속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낙수이론’이 대기업 배불리기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집권한 박근혜 정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우리는 속속들이 기억한다. 그들의 주장대로 국정을 운영한 결과가 오늘날의 ‘헬조선’임을 국민들은 꿰뚫어 알고 있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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