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탐사보도 전문 독립언론인 <뉴스타파>의 임보영(29) 기자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경찰관이었다. 그것도 경찰대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엘리트 경찰이었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서 경위로 근무하던 그는 지난해 3월 사표를 던지고 경찰을 떠났다. 집회·결사의 자유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1월 방한한 마이나 키아이 유엔 특별보고관과 경찰청 간부들의 면담 자리에 통역 지원을 나갔다가 경찰관 생활에 깊은 회의감을 느껴서다. “간부들의 거짓말과 사실 왜곡을 지켜보면서 경찰 조직 변화를 위한 앞으로의 제 역할에 무력감을 느꼈어요. 시민들의 집회·시위 현장에 사복경찰을 배치하느냐는 질문에도 ‘아니다’라고 뻔한 거짓말을 하더군요.” 어릴 때부터 ‘제복’에 대한 꿈이 유달리 컸고, 고등학교 3년 내내 생활기록부에 장래 희망을 경찰로 적어 냈던 그는 평생의 ‘희망’을 접고 경찰을 떠났다. 그 뒤 정권이 바뀌면서 경찰에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을 사과했다. 집회 현장에 살수차, 차벽 등을 배치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발표됐다.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가 출범해 개혁 작업에도 착수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임 기자는 다시 경찰 조직에서 희망을 보고 있을까. “경찰개혁위원회에 참여한 분들의 면면을 보면서 정말 개혁이 잘 되기를 기원하지만 솔직히 말해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습니다. 경찰이 진정으로 인권경찰로 거듭나려는 의지가 있다기보다는 마지못해 하는 모습이 너무 분명하니까요.” 그는 무엇보다 경찰의 태도 변화가 ‘수사권 조정의 전제 조건으로 인권경찰의 구현 방침을 마련하라’는 청와대의 지시가 떨어진 뒤 나온 것에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국민들의 인권 개선 요구보다 정권의 지시를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경찰인데, 정권이 바뀌면 또 인권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요?” 경찰은 그나마 ‘강요된 반성’이라도 하는 시늉을 보이지만 검찰은 그마저도 없다. 반성은커녕 오히려 변화한 정치 환경에 잽싸게 적응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 부심하고 있다. 과거 정권의 적폐 청산 수사는 검찰에는 기사회생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적폐 청산 수사로 국민의 박수를 받게 되면 검찰의 근원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잦아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의 대상인 검찰이 적폐 청산 수사를 이용해 적폐 청산을 모면하려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의 극치다. 급기야는 문재인 대통령 입에서 검찰을 향해 “통렬한 반성”과 “확실한 책임”이라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것이 생존을 향한 검찰의 몸부림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앞으로 있을 검찰 인사에서 ‘정치 검사’들을 솎아내는 수준으로 봉합하고 근원적 검찰 개혁을 어떻게든 회피하려 들 것이다. 지금 검찰의 절체절명의 과제는 기존에 누렸던 방대한 권력을 최대한 사수하는 일이다. 그것은 신임 검찰총장부터 말단 검사에 이르기까지 조직 전체의 일치된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 좋은 검찰은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대선공약에 깃든 표현상의 조그만 틈새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사권을 조정한다’는 공약에서 ‘분리’는 외면하고 ‘조정’만 부각시킨다. 그 시도는 이미 어느 정도 성공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국정 과제를 제시하며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대신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일반적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한다’는 공약에서도 ‘일반적’이라는 표현을 물고 늘어진다. ‘일반적이지 않은 수사권’은 내놓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부정부패 수사 등 ‘특별수사’는 계속 검찰이 맡겠다는 뜻은 이미 문무일 검찰총장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확실히 밝혔다. 경찰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인권경찰 구현’에 대한 열망보다는 ‘수사권 획득’에 더 관심이 많다. 자치경찰제 도입 등을 말하지만 기존의 국가경찰제 뼈대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한 본질적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검찰은 스스로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으면서도 인권보호를 명분으로 기존의 특권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검찰개혁, 경찰개혁은 자칫 본말이 전도될 위험에 처해 있다. 검경만이 수사권을 갖는 차원을 뛰어넘는 ‘수사권의 다원화’ 등 보다 근원적인 대책에 눈을 돌려야 할 이유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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