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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내 친구 장준성 / 조혜정

등록 2017-07-23 18:37수정 2017-07-23 18:50

조혜정
대중문화팀장

그와 처음 만난 건 2003년 1월 서울 청량리경찰서(지금의 동대문경찰서)였다. 잠을 못 자 눈은 벌겋고, 물먹고(낙종) 선배한테 먹은 욕으로 마음은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들었지만, ‘좋은 기자’가 되겠다는 의욕 하나는 활활 타오르던 수습기자 때. 그땐, 냄새나는 경찰서 기자실에서 좀비처럼 생활하는 처지가 서로들 애처롭고 안쓰러워 소속 매체에 상관없이 수습들 두루 잘 어울려 지냈더랬다. <조선> 소속인 장준성과 내가 우호적인 관계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느 토요일 새벽. 일주일에 딱 하루 집으로 퇴근해 24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의 시작 시간에 장준성과 맥줏집에 앉았다. 왜 기자가 되고 싶었는지,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지, 기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뭐 그런 허세 가득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일주일치의 수면 부족과 피로가 알코올에 스며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장준성이 이런 얘기를 했다. “나도 <한겨레> 주식 갖고 있어. 창간 때 아버지가 내 이름으로 사두셨거든. 넌 참 좋겠다, <한겨레> 기자라서. 사람들이 신뢰하고, 자유롭게 기사 쓸 수 있는 곳에 다녀서.”

그런 장준성이 2006년 1월 회사를 옮겼다. 최문순 사장 시절의 <문화방송>이었다. 사주가 없는 언론사를 궁금해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꿈꾸는 그였기에 이직 소식이 반가웠다. 한동안은 같은 출입처에 나가며 도움을 주고받기도 했고 서로 물을 먹고 먹이며 자극을 주고받기도 했다.

신문과 방송으로 성격은 조금 달랐지만 기자로 같이 성장해오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현장에서 사라졌다. 김재철 당시 사장의 퇴진과 공정방송 실현을 요구하며 2012년 일곱 달 동안 이어진 파업이 끝나자마자 신사옥건설국으로 보복성 인사를 당한 것이다. 그는 “신사옥건설국엔 각자 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여기를 ‘유배지’로 만들어서 멀쩡히 일 잘하는 사람들한테까지 모멸감을 주는지 화가 난다”고 했다. 석 달 뒤엔 ‘신천교육대’라 불렸던 엠비시아카데미에서 맥주 만들기, 커피 바리스타 과정, 재테크 같은 걸 강제로 배운다고 했다. 기가 찼다.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가 내게 이전 출입처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때론 취재하고 있는 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던 게. 의아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해서 “출입처도 아닌데 뭘 그렇게 열심히 취재하냐”고 따졌다. 돌아온 답이 심장을 찔렀다. “음… 기사 쓰고 싶어서. 너무 기사를 쓰고 싶은데 쓸 수가 없으니 취재라도 하는 거지.”

그의 부침은 끝이 안 났다. <문화방송> 보도 전반을 모니터링하는 노조 전임자(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가 되자마자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문화방송>의 보도 참사도 함께 벌어졌다. 정부 비판 기사는 축소되거나 빠졌고, 그를 감시하고 비판하던 장준성은 노조 임기가 끝난 직후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 기간이 끝난 뒤에도 보도국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위성처럼 보도국 주변을 맴돌기만 하던 그는 결국 지난 2월 다시 노조 전임자로 가 교섭쟁의국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김장겸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실현을 요구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사장 이름만 바뀌었을 뿐, 5년 전과 똑같이. 그러면서 허탈하게 웃는다. “10살 난 조카가 ‘왜 텔레비전에 안 나와요? 잘렸어요?’ 묻는데 할 말이 없더라”며.

이게 내 친구 장준성만의 이야기일까? 지금 <문화방송>엔 ‘장준성들’이 수십명, 어쩌면 수백명일 거다. 이들이 다시 “엠비시 뉴스 장준성입니다”라고 리포트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정치’는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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