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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동물의 휴머니즘 / 허문영

등록 2017-07-21 21:42수정 2017-07-21 22:10

허문영
영화평론가

생후 두 달 된 새끼 고양이가 10m 깊이의 좁은 배수로에 빠져 애처롭게 울고 있다. 속수무책의 어미 고양이는 배수로 입구 주위를 배회하며 닷새째 함께 울고 있다. 주민들의 신고로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새끼 고양이를 구출하고, 어미와 새끼는 마침내 재회해 서로를 핥아준다.(, 7월16일 방영)

낯익고 감동적인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에 감동받는 스스로를 가증스럽다고 여긴다. 내가 느낀 감동이 정말 개별자로서의 저 고양이 모자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모종의 동일시 효과가 낳은 자기 연민일 뿐일까.

동물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사람에게 이런 실화를 접하는 건 흔한 일이다. 가시고기 수컷은 암컷이 수초에 알을 낳고 떠나면 수초 곁에서 먹지도 자지도 않고 지느러미를 펄럭여 알에 산소를 공급한다. 며칠 뒤 부화한 새끼들은 쭉정이가 되어버린 아비의 육체를 첫 먹이로 삼은 뒤 수초 둥지를 떠난다. 가공할 만한 부성애다.

희귀한 장면도 있다. 늙고 추레한 암사자가 초원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자세히 보면 턱이 부서져 사냥은 물론 질긴 고기를 먹기조차 힘든 것 같다. 그는 곧 굶어 죽을 것이다. 그때 다른 암사자들이 얼룩말을 사냥해온다. 늙은 암사자가 다가가자 한 암사자가 먹기를 멈추고 얼룩말의 뒷다리를 쳐들어준다. 늙은 암사자는 그제야 이미 가죽이 뜯겨나간 부드러운 속살을 먹기 시작한다. 그는 조금 더 살 수 있을 것이다. 내레이터는 “아마도 그 암사자는 늙은 사자의 자매일 것이다”라고 일러준다.

이런 감동적인 장면들은 우리가 동물이라는 타자를 수용하는 주된 방식인, 인간화된 동물 이야기의 사례다. 동물에게도 이런 모성애와 부성애, 형제애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 <옥자>는 이런 방식의 픽션 판본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거대 돼지 옥자는 명민한 상황 판단으로 위기에 빠진 소녀를 구하는 영특하고 따뜻한 친구다. 사육장의 거대 돼지들은 자기 육신이 고기로 잘려나가기 직전에도 갓 태어난 새끼를 구하기 위해 기민하게 협력하는 이타성과 협동심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동물의 휴머니즘이 허구에 가깝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둥지의 어떤 어린 새들은 굶어 죽은 형제를 먹어치우며, 어미 고양이는 새끼들을 모두 부양할 수 없을 때 일부를 죽이기도 한다. 수사자의 잔혹한 새끼 살육은 유명하다.

그럼에도 동물의 휴먼스토리가 널리 소비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류는 동물에 관한 한 학살의 공범이다. 이 사태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도 거의 없다. 동물의 휴먼스토리는 이런 죄의식의 위장된 표현일 것이다. 타자의 거세 후 복권은, 20세기 미국문화가 인디언을 신비화한 데서도 나타나듯, 문명의 상습화된 전략이다.

다른 이유 하나는 여전한 동물의 침묵인 것 같다. 극소수의 반려동물을 제외하면 동물은 여전히 인간에게 다른 동물을 대할 때와 다른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존 버저의 표현을 빌리면 “무지와 공포를 건너 인간을 바라보는 무심한 시선” 앞에서, 모성애 이야기 같은 가장 흔한 인간의 스토리텔링으로 그 무지와 공포를 수습하려는 것이다.

동물의 휴머니즘이라는 허구로 동물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타자는 나와 같은 규칙을 갖고 있지 않다. 동물의 윤리는 인간의 윤리와 무관하다. 그의 무심한 시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할 때, 동물사랑이라는 텅 빈 말이 그 공허함을 조금이라도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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