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해 ‘갑질 논란’을 일으킨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14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종근당 본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941년 서울 아현동에 4평짜리 ‘궁본약방’이 문을 열었다. 당시 23살이던 주인 이종근은 어려서부터 철공소 견습공, 정미소 쌀 배달원으로 일했고, 21살 때부터는 약품 외판원으로 전국 약방을 돌아다니며 약을 팔았다. 1946년 자신의 이름을 따 ‘종근당 약국’으로 상호를 바꿨고, 1949년 국내 최초 튜브 연고 제품 ‘다이아졸 연고’를 시작으로 제약사의 길을 걸었다. 종근당은 원료 의약품 국산화 선구자로, 1969년에는 한국 의약품 수출의 57%를 차지했고, 1972년에는 국내 제약사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했다. 종근당 출신들이 다른 제약사 간부로 활동하거나 제약사를 설립해 ‘제약업계 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했다.
이종근 회장은 한국전쟁 때인 부산 피란 시절에도 종업원에게 야간학교를 다니게 하고, 1970년대부터 중학교 이상 자녀를 둔 종업원에게 학자금을 지원하고, 직원들의 대학원 진학도 적극 지원했다.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어린 시절 ‘배움’에 대한 아픔 때문이었다. 1973년 사재를 털어 고촌장학재단을 설립한 그는, 1979년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자신은 장학사업에 매진했다. 1986년에는 그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고촌재단은 지난 44년간 총
7371명에게 397억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고촌재단은 또 2011년부터 동교동, 휘경동, 중곡동 등 서울 3곳에 기숙사를 세우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지방 출신 대학생들을 선발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1993년 이 회장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이장한 회장이 41살에 회사를 물려받았다. 지난 14일 이장한 회장은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욕설을 한 사실이 물의를 빚자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다. 13일 <한겨레>에 공개된 녹취파일 중에는 이 회장이 기사에게 “니 애비가 뭐 하는데…제대로 못 가르치고”, “니네 부모가 불쌍하다”라고 말한 대목도 있다.
권태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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