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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비평의 도시’ 부산의 아이러니 / 이명원

등록 2017-07-07 18:14수정 2017-07-07 20:56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지난 6월23일 부산작가회의 주최, 계간 <작가와 사회> 주관으로 ‘문예지의 진단과 점검’이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부산 중앙동 백년어서원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는 오늘날 문예지가 처해 있는 여러 형태의 현실적 위기들을 논의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사실 부산 지역의 문학 생태계에 대해서 나 자신이 무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늘의 문예비평>의 주간인 문학평론가 손남훈의 발제와 토론을 지켜보면서 몇몇 고민을 해볼 수 있었다.

한국 문학계에서 희유하게도 부산은 ‘비평의 도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요산 김정한을 포함하여 걸출한 소설가, 시인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불리는 것은 아마도 <오늘의 문예비평>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이 매체는 비평동인지 또는 비평전문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1991년 창간된 이후 통권 100호가 넘는 기간 동안 한국문학 비평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했다. 서울 중심의 문단과 비평적으로 경합하기도 제휴하기도 하면서, 한국문학 비평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도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이 매체가 창간 20주년이던 2011년 3월26일, 부산 영광도서 사랑방에서는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이때에도 나는 발제자의 한 사람으로 우연히 이 자리에 있었다. 당시 이 세미나의 후원을 ㈜영광도서와 당시로서는 신생출판사였던 산지니 출판사가 맡았다. 아마 산지니 출판사가 <오늘의 문예비평>의 발행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세미나에서 확인하게 된 것은 20주년 당시의 <오늘의 문예비평>과 산지니 출판사의 우호적 관계가 현재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출판사의 경영상 이해관계와 문학제도 안에서의 상징적 위상의 확장 의지가 이 매체 편집동인의 문학적 지향성과 문화적 자율성 추구와 타협적으로 균형을 취할 때는 순조로운 협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현재는 이 타협적 균형이 깨진 것 같다.

손남훈 주간의 주장에 따르면 ‘2016년 문예지 우수콘텐츠 아카이빙 사업’에 <오늘의 문예비평>이 선정되어 1056만원의 지원금이 결정되었는데, 이 매체와의 관계를 청산한 출판사 측이 편집위원들과의 어떠한 협의도 없이 지원금을 포기한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역시 다른 경로로 확인하게 되었고, 이후 출판사 측에 항의를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다소 아이러니한 것은 산지니 출판사 역시 송인서적의 부도에 따른 여파로 경영악화를 호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독립적인 전통을 가진 매체의 편집동인과 역시 독립적인 법인체인 출판사와의 관계 복원은 이래저래 쉽지 않을 듯하다.

이 부분에서 정작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늘의 문예비평>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지나면서, 기존에 있었던 우수문예지 지원제도 등이 폐지되어 많은 문예지들이 존폐의 기로에 섰던 것이 사실이다. 문학인들에게 부산은 ‘비평의 도시’이지만 대중들에게는 ‘영화의 도시’로 인식되며, 이조차도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 사태 등으로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영화도 살리고 문학도 살리자. ‘비평의 도시’ 부산을 살리는 데는 영화제처럼 많은 예산이 소요되지 않는다. <오늘의 문예비평>은 부산이라는 지역문화의 공공적 자산인 동시에 한국문학의 중요한 상징이다. 문화정책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지역문학의 복원·강화도 검토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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