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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문민 국방장관’으로 눈을 돌릴 때다

등록 2017-07-05 18:29수정 2017-07-05 20:55

김종구
편집인

지난달 초 저녁 자리를 함께한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특히 국방부 장관 후보자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군 출신 인사들을 검증해보니 의외로 흠 없는 인사를 찾기가 어렵네요.” 그리고 며칠이 지나 송영무 전 해군참모총장을 국방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그러나 도덕성 의혹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오면서 그는 야당은 물론 대다수 언론으로부터 부적격자라는 뭇매를 맞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을 반추해보면, 검증 과정에서 이미 송 후보자의 흠결을 상당 부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지명을 강행한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군 출신, 그것도 육군의 저항을 뚫고 국방 개혁을 추진할 마땅한 다른 비육군 출신자를 찾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특히 그가 법무법인으로부터 거액의 자문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방개혁 적임자라는 명분마저 빛이 바랬다. 송 후보자가 받은 고액의 자문료와 관련해 한 군 출신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군 장성 출신들이 현역 때는 육군-공군-해군 순으로 우대를 받지만 전역 뒤에는 거꾸로 해군-공군-육군 순으로 대우를 받는다. 방위산업체와 관계를 맺을 경우 해군은 운용 장비가 훨씬 비싸고 고위 장성 출신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육군 출신보다 훨씬 대우가 좋다.”

송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육군 출신들을 잘 통제해 국방개혁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송 후보자와 육군과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타군 출신 국방장관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육군의 집단적 배척 의식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송 후보자의 음주운전 조사 기록 등 송 후보자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한 각종 ‘기밀 자료’들이 새어나온 것도 송 후보자에 대한 군 내부의 반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군사기밀 유출”로 규정하고 “제보자 색출” 따위로 법석을 떠는 것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참여정부 시절 해군 출신 윤광웅 국방장관도 임기 내내 육군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송 후보자의 경우 이미 도덕성에 치명상까지 입었으니 개혁을 위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란 힘들어졌다.

국방장관에 군 출신을 앉히려는 이유는 자명하다. 민간인 출신 장관에 대한 국민의 막연한 안보불안심리와 ‘군심’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국방장관은 ‘군인’이, 보건복지장관은 ‘의사’가, 법무장관은 ‘검사’ 출신이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검찰 개혁을 ‘비고시 출신’에게 맡기는 논리와 마찬가지로 국방 개혁 역시 비군인 출신한테 맡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청와대가 처한 상황 역시 그렇다.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송 후보자의 장관 임명을 강행하기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흠 없는 군 출신, 그것도 비육군 출신 인사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과감히 눈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민간인 출신을 국방장관에 지명할 절호의 기회다. 특히 전임 정권에서 육사 출신이 모든 안보라인을 장악했지만 안보가 오히려 뒷걸음친 것을 보면서 ‘군 출신=안보’라는 국민의 막연한 통념도 깨졌다. 국방부는 명령과 지휘 복종이 강조되는 군부대가 아니라 행정부의 정책부서다. “국방장관은 무엇보다 상충적인 요구와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식별하며, 평가하고 조화시키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새뮤얼 헌팅턴의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군에 대한 문민 통제는 단지 ‘문관이 무관을 통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군사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을 어떻게 구분하고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문민 통제의 핵심이다. 이제 명실상부한 군에 대한 문민 통제 시대를 열 때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의 시기상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청와대 역시 송 후보자의 장관직 임명을 강행하는 변명거리로 활용하고 싶은 유혹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6년 8월을 떠올려보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장영달 열린우리당 의원을 국방장관에 지명할 결심을 굳히고 본인에게 통보까지 했으나 때마침 터진 북한 1차 핵실험 때문에 포기했다. 그러나 당시에 그냥 문민 국방장관 시대를 열었다면 어땠을까. 남북 긴장 상태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는 한 상황은 언제나 똑같다. 옳은 길이라면 결행 시기를 앞당길수록 좋다. 그리고 지금이 적기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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