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 공씨책방 앞 인도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서울시 미래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대표적인 헌책방도 젠트리피케이션 광풍에 밀려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1번 출구에서 500m가량 가면, ‘공씨책방’이 있다. 44년 된 헌책방이다. 요즘 프랜차이즈 헌책방은 새 책이나 다름없는 책들만 취급하지만, 15평 남짓한 공씨책방에는 손때 묻은 빛바랜 헌책 10만권이 켜켜이 쌓여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공씨책방은 고 공진석씨가 1972년 서울 회기동 경희대 근처에서 처음 문을 연 게 시초다. 그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지만, 책과 문학을 사랑해 1970년대에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다. 청계천에서 헌책을 떼어올 때도 맘에 안 드는 책은 아무리 잘 팔려도 사오지 않았다. 계간지 <옛책사랑>을 펴냈고, 책더미 속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지금 대표 장화민(60)씨는 여고를 졸업한 1976년 이모부 공씨의 부탁에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가 평생의 업이 됐다.
공씨책방은 1985년 광화문 새문안교회 맞은편에 전국 최대 규모 헌책방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헌 교보문고’로 불리던, 공씨책방의 짧았던 ‘화양연화’였다. 그러다 광화문 재개발로 가게를 비워야 할 즈음, 1990년 헌책을 가져오던 공씨가 버스에서 뇌출혈로 숨졌다. 막막하던 차에 신촌으로 옮길 것을 제안한 사람이 당시 단골이었던 박원순 변호사였다. 1991년 신촌으로 옮겨왔고, 지금 자리에선 1995년부터 22년간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공씨책방이 있는 건물을 매입한 새 건물주가 ‘보증금 3000만원, 월세 300만원’을 요구했다. 지금 월세의 두 배가 넘는다. 건물주는 건물을 비우라는 명도소송을 냈다. 공씨책방은 아직 갈 곳을 못 찾았다.
장 대표는 옛 단골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편지를 보내 에스오에스(SOS)를 쳤다. 박 시장은 26일 페이스북에 이 편지를 공개했다. 서울시도 최선을 다할 테니, 시민들도 도와달라고 했다. 2014년 서울시가 지정해, 공씨책방 입구 벽에 ‘서울미래유산’ 팻말이 붙어 있다.
권태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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