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에디터 내 고향은 전북 군산이다. 주한미군의 주요 기지인 군산K-8 공군기지가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친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미군기지에서 먹어봤다는 미제 아이스크림과 과자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였다. 고향 선배의 아버님은 한국전쟁에 끌려갔다가 미군의 폭격을 당했다. 땅에 엎드려 목숨을 구한 뒤 일어나 보니 주위는 온통 불바다에 살아남은 이는 혼자뿐이었다. 그분은 그때 미 제국의 힘에 압도되셨다고 한다. 돌아온 뒤 평생을 미군기지에서 일하셨다. 미국은 유일한 강대국이자 세계질서였다. 그것을 넘어서는 질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한국 보수 기득권층은 아예 미국과 한-미 동맹을 절대적 종교로 만들었다. 태극기와 성조기, 십자가를 치켜든 탄핵반대 시위는 그들의 실패한 부흥회였다. 의정부시가 미2사단 창건일인 10월26일보다 넉달이나 앞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소녀들의 15주기를 사흘 앞둔 날을 굳이 잡아 ‘미2사단 100주년 슈퍼콘서트’를 강행하려다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되자, “한-미 동맹 망치는 시민단체”라며 맹비난하는 이들의 한-미 동맹 절대주의는 어떤가. 이런 이들을 향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더이상 그런 종교가 가능하지 않다고 온몸으로 간증한다. 그는 미국 정치를 막장극 트럼프쇼로 만들었고, ‘미국은 최고이고, 동맹은 중요치 않다’고 큰소리친다. 미국 패권을 지탱해온 중심축인 나토 정상회의에선 분담금을 제대로 안 낸다며 회원국 정상들을 윽박질렀다. 중동의 위험한 종파 균형을 무시하고 반이란, 친사우디 정책에 몰두한 결과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 핵심 동맹인 카타르를 위험한 처지로 몰아넣었다.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선언으로 지구온난화와의 힘겨운 싸움에 일격을 가하고, 테러를 당한 동맹국 영국의 런던 시장에게 트위트로 막말을 한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더이상 유럽의 운명을 미국에 맡길 수 없다’고 선언했다. 트럼프가 몰고 온 역설적인 ‘민족자결 시대’ ‘글로벌 각자도생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 말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한·미 보수세력들은 ‘사드교’의 깃발을 들고 문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우선시하라고 압박한다. 이들은 사드만 배치되면 북한 미사일을 다 막을 수 있는 듯 과장하면서, 환경영향평가 등으로 사드 배치가 늦어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라고 겁준다. 문재인 정부의 사드 배치 잠정중단은 한-미 동맹에서 이탈해 중국을 편들려 하는 것이라고 화를 낸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13일 “문재인 정부가 강대국 사이 균형자 역할을 하려 하는 동시에 대북 협상을 추구하는 순진함이 한국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다”며 “안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사드) 환경영향평가는 생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얼마나 직설적인가. 한국 국방부가 “비공개하기로 미국과 합의했기 때문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사드 발사대 4기 반입 보고를 빼놨다는 것은 ‘대통령은 국군을 통수한다’는 헌법 조항 위반이다. 주권국가로서 사드 기습배치 과정에 대한 검토와 환경영향평가, 국회 동의 절차는 당연하다. 한국 정부는 한국의 국익을 고려해 한-미, 한-중, 남북 관계의 맥락 속에서 사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미국은 동유럽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방어체제를 배치하려다 러시아의 반대, 폴란드와 체코 여론의 반발 등으로 2009년 배치 철회를 발표했다. 그 때문에 미국과 폴란드·체코와의 관계가 파탄나는 상황은 없었다. “너희가 사드를 믿느냐”는 신앙고백 강요, 이제 멈춰라. 한-미 동맹은 종교가 아니라 외교여야 한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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