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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누가 ‘철부지’와 ‘결자해지’를 말하는가

등록 2017-06-14 18:01수정 2017-06-14 21:27

김종구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이런저런 자료를 읽다가 흥미로운 연구논문을 하나 접했다. ‘역대 한미 대통령 묘사 프레임 분석-뉴욕타임스와 조선일보의 한미 정상회담 보도를 중심으로’(설원태, 2012년)란 논문이다. 연구자는 언론의 대통령 묘사 프레임을 1)영웅·선생님 2)동격 지도자 3)전략가 4)철부지·반항아 5)독재자·구걸인 등 5가지로 나누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영웅·선생님, 전략가, 독재자·구걸인 프레임(미국에 군사적·경제적 원조 요청)의 빈도순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는 전략가 프레임이 압도적이었고, 전두환 대통령은 동격 지도자(미국 대통령과 평등한 입장에 선 것처럼 보도)와 전략가 프레임의 빈도가 높았고, 영웅·선생님 프레임도 적지 않았다. 반면에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이들 세 대통령에 대해서는 영웅·선생님 프레임 빈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가 가장 박하게 묘사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철부지·반항아 프레임이 무려 30%를 넘어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부정적 묘사 프레임은 한 건도 없이 전략가 프레임과 동격 지도자 프레임 등 우호적인 보도로 채워졌다고 이 논문은 분석했다. 진보·보수 성향의 대통령들에 대한 보수언론 및 보수세력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보수세력은 이미 철부지·반항아 프레임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사드 발사대 4기 추가반입 보고 누락, 환경영향평가 문제 등과 관련해 일제히 한-미 간의 사드 엇박자를 지적하며 문 대통령에게 “결자해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철부지·반항아 프레임을 차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외교의 철부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따를 사람이 없다. 한국 외교를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뜨린 것도 바로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구여권 세력이다. 그러니 이들이 ‘결자해지’니 ‘역량 부족’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부터가 한 편의 코미디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 등은 너무나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외교안보 역량이 매우 우려된다”며 임명을 한사코 반대한다. 이런 평가 역시 철부지론의 연장선에 있다.

그렇다면 과연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북핵, 사드, 중국의 보복조처 문제 등을 일거에 해결할 비법을 갖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자신들이 무리하게 강행한 ‘사드 알박기’를 고수하는 데만 힘을 쏟을 뿐 뾰족한 대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무능으로 말하자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야말로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인물이다. 한국 외교가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데도 자화자찬을 일삼았다. 강 후보자가 외교장관에 임명되면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의 윤 장관보다는 훨씬 유능할 것 같다.

사실 한-미 정상회담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두 나라 정상의 높이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나 국력 등 모든 면에서 양국은 확연한 비대칭 관계에 있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탁월한 협상가다. 양국 간 현격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사드, 방위비 분담금,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을 종횡으로 엮어서 한국을 압박해올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문 대통령은 국제무대에 갓 데뷔하는 ‘초짜’인 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로 불리한 형편에서 사자에 맞설 돌멩이 하나라도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그런데도 우리 쪽은 외교부 장관 등 선수단도 완전히 구성되지 않았다.

외교안보 문제에서의 초당적 협력의 중요성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은 바로 구여권과 보수세력들이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모습은 당파주의적 거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사드 배치의 내부적 절차의 정당성 점검, 국회 논의 가능성 등 우리 쪽도 미국 쪽과 협상할 공간과 레버리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보수세력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내세워 모든 공간을 닫아버리려 한다. 미국에 ‘노’라는 말을 한마디도 해서는 안 되는 순종자, 미국의 심기를 조금도 거스르지 않는 순한 양이 되는 것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설파한다. 그런 주장이야말로 급박하게 요동치는 국제사회의 엄혹한 파고를 헤쳐나갈 수 없는 철부지적 태도는 아닐까.

편집인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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