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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겟 아웃>, 인종주의의 다른 얼굴들 / 허문영

등록 2017-06-09 17:52수정 2017-06-09 21:08

허문영
영화평론가

“법만 허락했다면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세 번 뽑았을 거야.”

백인인 딘은 딸 로즈의 흑인 남자친구 크리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형적인 상류층 백인의 저택이라는 낯선 공간에 와서 주눅 들고 긴장한 흑인 청년의 마음을 풀어주기에 더없이 효과적인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공간은 크리스에게 점점 지옥으로 변해 간다.(아래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5월17일 개봉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겟 아웃>(조던 필 감독)은 영리한 공포영화로서의 장점뿐 아니라 생각할 거리도 꽤 있는 영화다. 소재는 짐작되듯 미국의 인종주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인종주의는 한 가지가 아니다.

첫째는 전통적 인종주의라 일컬을 만한 것이다. 백인 여성 로즈가 운전을 하다 사슴을 치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경찰은 흑인 남성 크리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다. 흑인을 열등한 존재 혹은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전통적 인종주의는 미국 사회에 여전히 만연하지만, 이것이 <겟 아웃>의 본론은 아니다.

둘째는 인종적 페티시즘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영화의 본론에 해당한다. 딘 가족과 백인 친구들은 오히려 흑인을 찬미한다. 찬미 대상은 주로 흑인의 신체적 성적 능력이지만 한 노인은 크리스의 예술적 재능을 칭송한다. 문제는 그 능력과 재능을 백인이 소유할 수 있는 재화 혹은 주물로 여긴다는 것이다.

영화 속 늙은 백인들은 젊은 흑인을 납치한 뒤 뇌 이식을 통해 백인의 주체성과 흑인의 육체를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나려 한다. 타이거 우즈와 비욘세, 힙합과 솔에 열광하지만 흑인차별에는 무관심한 이 페티시즘을 <겟 아웃>은 교양주의와 인종주의가 결합한 끔찍한 괴물로 제시한다.

셋째는, 이 영화가 직접 제시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자족적 진보주의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겟 아웃>을 보고 이런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과연 딘은 곧 백인의 제물이 될 가련한 흑인 청년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오바마를 다시 대통령으로 뽑고 싶었을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영화에는 ‘마법의 흑인’(The magic negro)이라고 하는 배역이 있다. <사랑과 영혼>의 오다 매, <매트릭스>의 오라클처럼 특별한 지혜나 초능력을 발휘해 백인 주인공을 구하는 전형적인 조역을 일컫는다. 물론 이 용어에는 정치적 함의와 용법도 있다. 2008년 미국 공화당 선거운동 진영에서 퍼뜨린 노래 ‘마법의 흑인 오바마’는 오바마의 인기가 죄의식을 가진 백인들이 ‘검지만 진정으로 검지 않은’(black, but not authentically) 그에게 투표함으로써 자족감을 얻는 데서 기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정으로 검지 않은’의 숨겨진 의미는 ‘백인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는 정도의’이다.(앤드루 포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정적들의 비방 문구이긴 하지만 여기엔 어떤 진실이 있는 것 같다. 딘은 오바마에게 투표함으로써 자신의 죄의식을 달래고 도덕적 자족감을 만족시킬 수 있으며 진보성을 뽐낼 수도 있다. 더구나 대통령 오바마는 그의 재산과 지위를 전혀 위협하지 않는다. 이건 충분히 남는 장사다.

탈인종주의적이며 심지어 도덕적으로 보이는 선택조차 근본적으로 인종주의적일 수 있다. 이것이 <겟 아웃>의 가장 도발적인 전언 같다. 타자 혹은 소수자를 향한 관심과 존중이 아니라 오직 도덕적 나르시시즘을 향한 진보적인 정치 행위와 발화는 어떠한가. <겟 아웃>은 우리에게도 날카로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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