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사회에디터
언론인 출신의 프랑스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가 남긴 많은 명언 중에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서 장군들에게 맡겨놓을 수 없다’는 말은 여러 분야에서 변주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인회 인하대 교수와 함께 쓴 <검찰을 생각한다>는 책의 핵심을 클레망소의 명언에 대입하면 이런 해답이 나올 것 같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너무나 중요해서 검경에 맡겨놓을 수 없다.’ 참여정부는 이토록 중요한 문제를 검찰과 경찰의 자율 조정에 맡겼고, 결과는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완전한 실패였다. 지은이들은 이 점을 가장 뼈아프게 생각한다.
설마 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지를 것 같지는 않지만, 문재인 정부가 또 그 길을 가려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청와대가 수사권 조정을 전제로 경찰 스스로 인권친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오라고 하자 경찰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돌이킬 수 있는 것들뿐이다. 그러면서 집회 관리를 교통경찰 위주로 하려면 경찰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침해의 대명사인 경찰이 조직의 숙원인 수사권 조정을 전제로 내놓는다는 대책이 고작 이 정도라니 가소롭다는 반응이 나온다. 게다가 한 경찰 관계자가 ‘촛불집회의 성숙함을 보니 그렇게 해도(살수차나 차벽을 배치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는 대목에서는 경찰이 우리 국민을 정말 우습게 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축제처럼 평화롭게 진행되던 2008년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경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경찰은 여태 모르고 있는 것인가.
검찰과 경찰은 속성상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 폭력기구들이다. 이들의 권한은 국민의 안전에 명백한 위해를 가하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사용되도록 통제해야 한다. 분명한 건, 모든 개혁의 상위에 인권이 있어야 하며, 수사권(강제력)의 총합이 플러스가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인권과 수사권은 제로섬 관계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공약 사항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는 문제가 많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적했듯이, 공수처 설립은 검찰개혁의 방향을 거꾸로 잡은 것이다. 지금 검찰 문제의 핵심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함으로써 생기는 것인데, 검찰 수사권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수사기관을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경찰에도 수사권을 주는 것은 국민들 처지에서 보면 강제력을 갖는 수사기관이 셋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견제’에 방점을 찍다 보니 인권에 역행하는 결과가 생길 판이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이 수사를 못하도록 하고 기소만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검찰에서 떼어낸 수사권을 경찰에 주려면 경찰 조직의 민주화는 필수적이다. 근본적이면서도 시대 변화에 맞는 대책은 경찰청을 해체하고 자치경찰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경찰청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수사권을 갖게 된다면 검찰보다도 강력하고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경찰은 10만이 넘는 방대한 조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말한 ‘행정경찰과 수사경찰 분리’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에 휘둘리지 않을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인력을 통합해 미 연방수사국(FBI) 같은 ‘수사청’을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하나의 방안일 뿐이다.
막이 오른 상태에서 지휘자가 교체되고 연주자들은 아직 입장도 못했다. 튜닝도 못한 제1바이올린만으로 연주하는 서곡에 대한 반응이 벌써 뜨겁다. 이 글이 성마른 관객의 부질없는 기우였음을 명연주로 입증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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