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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대중매체 새살아 돋아라 / 남지은

등록 2017-05-28 18:18수정 2019-06-30 19:24

남지은

문화부 대중문화팀

할 말들이 많은 듯했다. 상처도 많아 보였다. 흉터도 오래갈 것 같다. 사석에서 만난 피디, 코미디언, 배우들은 앞다퉈 지난날을 성토했다. 일명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9년간 코미디언들의 속이 가장 문드러졌다. 풍자에 족쇄를 채운 것은 알았지만, 실상은 더 심했다. 방송사 간부가 녹화를 지켜보다가 “웃는 얼굴이 ‘그분’과 닮았다”며 못 웃게 하거나, “‘그분’이 연상되는 손동작은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녹화 전 대본을 미리 읽어보며 사실상 검열을 했고, 풍자 꼭지를 부활시킨 피디를 불러 “그걸 꼭 해야겠느냐”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간부도 있었다. 풍자 개그에 출연하니 타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잘렸고, 행사가 끊겼다. 숱하게 나온 외압논란 중 상당수는 ‘논란’이 아닌 ‘사실’이라는 커밍아웃도 나왔다.

“코미디언에 견주면 새 발의 피”라는 배우의 사례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당시 출연 중이던 드라마의 간부가 분향소에 가지 말라고 했다.” 세월호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게 이유였다. 피디는 전체회의 시간에 우리의 행태를 반성해야 한다고 얘기했다가 고위 간부들의 눈 밖에 났다.

지시가 있었는지, 알아서 조심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전두환 정권’ 시절 그와 닮았다는 이유로 사실상 출연정지 된 배우의 사례가 떠올라 말문이 막혔다. 비슷한 사례들을 쏟아내며 이들은 한탄했다. “그동안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았던 것일까.” 그러나 정작 이들을 짓누르고 있던 건 “투사가 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검열 정권에서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 앞에서 그들은 부끄러웠다고 했다. 먹고사느라 눈을 감고 있었다는 자괴감이 더 그들의 상처를 아물지 못하게 한 것 같다. 종국에는 자신을 탓했다.

피해자한테 ‘네 잘못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 지난 정부가 준 상처를 어떤 말로 치유할 수 있을까. 출범 4주차인 ‘문재인 정부’가 잘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이들의 아픔을 쓰다듬는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였던 당시 <티브이엔>(tvN)의 풍자코미디프로그램 <에스엔엘(SNL) 코리아 시즌9>에 출연해 자신을 패러디한 문재수(김민교)를 만나 “정치가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게 참 좋다”고 말했다.

이 말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현실이 됐다. <에스엔엘 코리아>에서는 다시 정치 풍자가 되살아났고, 사실상 금지곡처럼 여겨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지난 5월18일 <한국방송(KBS) 라디오>에서 연이어 울려 퍼졌다. 친일청산의 메시지를 깔아놓은 드라마(<도둑놈, 도둑님>·문화방송)까지 등장하는 등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소재들이 등장했다. 201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삼은 <바보햄릿>으로 ‘블랙리스트 검찰 조사 1호 연극인’이 됐던 김경익 연출이 다시 <바보햄릿>을 선보이는 등 박근혜 정부 시절 억압받았던 연극계도 다시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 다큐영화 <노무현입니다>는 개봉일 7만8천여명이 관람하며 역대 다큐영화 최고의 개봉 성적을 내는 등 대중매체에 ‘노무현 바람’도 불고 있다.

텔레비전만 틀어도 이들은 “나라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등 깊게 파인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 지난 정권에 부역하던 간부들이 바뀌고,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문화콘텐츠가 쏟아진다면, 이들의 마음도 열리지 않을까. 물러터진 상처가 이제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연고를 만났다. 부디 새살이 솔솔 돋아나길.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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