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의 ‘성숙한’ 리더십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이 뜻밖의 화제다. 문 대통령은 누가 되든 가장 어려운 때 가장 어려운 자리가 될 것이라던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국정교과서 폐기 지시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허용을 시작으로 내년 6월 개헌 약속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일련의 조치들을 매우 속도감 있게 발표했다. 마치 치밀한 사전 준비를 마친 듯 정교한 의제 관리를 수행하고 있다. 적재적소, 참신과 파격, 탕평 인사를 하고 겸손과 온유, 인내와 포용, 신중함과 결단력의 리더십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은 실로 오랜만에 정치에서 즐거움과 흐뭇함, 감동, 전율까지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일부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이 몇가지 지적과 문제를 제기하지만 논리의 군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오히려 이념적 도그마와 진영 논리에 갇혀 있는 자신의 문제점만 드러내는 꼴이다.
문 대통령의 리더십 특징은 선함과 의로움, 공감과 배려, 상생과 협치, 상식과 원칙으로 표현되는 긍정의 정치, 포용의 정치를 구사하면서 통 큰 진보적 가치를 구현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열흘 남짓 동안 문 대통령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이념과 정파, 진영 논리에 전혀 갇혀 있지 않고, 패권정치나 권력욕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노무현 정부 때의 상처와 회한, 2012년 대선 때의 어색함과 무력감과는 확연히 다른 성찰과 통찰, 성숙과 의연의 지도자로서 다수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 대선 보도와 진보진영의 갈등
이렇게 ‘문재인 정부’의 ‘기분 좋은 출발’ 상황에서 뜻밖에도 진보 언론 <한겨레>의 길을 묻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온라인상에서 이미 공개된 비밀이 되어 버린 <한겨레>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사이에 빚어진 반목과 갈등은 문재인 대통령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둘러싼 진보 진영의 내분 사태로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서로 사랑하니까, 기대하니까 싸우는 사랑싸움이니 곧 화해할 일만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갈등의 연원은 참여정부 후반 한-미 에프티에이(FTA) 추진, 이라크 파병, 대북송금 특검 등을 둘러싸고 <한겨레>가 진보 정부를 지나치게 비판했다는 비난과,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진보언론의 책임도 있다는 의식에까지 이를 정도로 깊고 복잡하다. 대선 기간에는 온라인에서 뭉친 문재인 후보 지지집단이 항의와 실망, 비판을 담은 게시글과 전화를 <한겨레> 시민편집인실로 전달하기도 했다. 내용은 첫째, 왜 진보신문 <한겨레>가 보수신문들이 전략적으로 행하고 있는 ‘안철수 띄우기’에 동참하고 있는가? 서운하다, 배신감을 느낀다, 분노한다는 것이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문 후보와 안 후보가 동률로 나타난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 보도는 ‘안철수 띄우기’ 일환 아닌가? 여론조사 방법상의 문제가 있었고, 따라서 정확하지 않은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한겨레> 제작자들은 특정 후보 띄우기 의도가 전혀 없었고 그럴 이유가 없다고 해명했고, 사실 <한겨레>의 진보성을 감안할 때, 촛불대선과 진보경향을 유지하고 있는 문재인 후보를 대신해서 우클릭 이동하고 있는 안철수 띄우기를 의도적으로 시도했을 이유나 근거를 찾기 힘들다. <한겨레> 대선보도를 분석해 보면, 문재인 대 안철수 후보 간 양적 균형 보도 노력을 기울이는 속에서도 보도 내용은 진보적 가치 프레임을 기준으로 문 후보의 촛불대선과 적폐청산에 공감하는 반면, 안 후보의 전략적 보수 이동을 비판한 것으로 나타난다. 사설과 칼럼에서 ‘경제위기 해법으로 ‘재정 확대’ 제시한 문재인 후보’(4월13일) 등 문 후보의 공약을 소개하는 반면, ‘안철수 후보, ‘사드 입장’ 바꾼 이유 해명해야’(4월11일), ‘어쩌다 보수후보 안철수’(4월10일), ‘안철수 띄우기’(4월13일) 등 안 후보 입장에 대해선 비판, 부정적이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4월17일, ‘22일간의 선거운동, ‘촛불 대선’ 의미 잊지 말길’ 사설과 11일 시론 ‘이것은 촛불 대선이다’는 문 후보의 10일 한겨레 인터뷰의 ‘“이번 대선은 촛불민심 대 부패기득권 세력간 대결”’과 가치와 방향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다.
문제가 됐던 4월10일치 여론조사 보도 ‘문재인-안철수 나란히 37.7%…보수층, ‘안’으로 대이동’ 기사는 조사방법 및 통계분석 자체는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의 수치는 통계상의 표본오차와 비표본 오차로 인해, 투표 결과나 주가지수처럼 고정값이 아니라 최소 3%포인트 최대 10%포인트 이상 출렁거리는 변화값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아 불필요한 오해를 샀다.
<한겨레>의 대선보도는 보수진영의 부당한 빨갱이 낙인찍기 전략에 ‘또다시 ‘북풍’으로 대선을 어지럽힐 셈인가’(4월22일) 사설 등으로 제대로 비판하고, ‘기자가 그린 대선여지도’라는 정책보도 연재물에서 근로여성, 근로남성(워킹 대디), 성소수자, 애니멀 피플 등 소수자의 입장에서 후보 공약을 바라보는 대안적인 시도를 했다. 그러나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한겨레> 또한 ‘최순실 의존증에 걸린 무능한 박근혜’ 후보를 식별해 내지 못했던 2012년 대선보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후보 검증 보도 노력에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팩트체킹 시도는 좋았으나 후보 진영간 네거티브 공세와 좌파 친북 색깔 논쟁에 매몰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검증하는 한계를 보였고, 출렁이는 판세 중심 보도는 <한겨레>마저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일부 오해를 샀다.
■ 문재인 대통령과 ‘아름다운 거리’ 동반자
진보적인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적인 출발이 진보 언론 <한겨레>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들 한다. ‘진보어용 언론’이 될 수도 없고 노무현 정부 때처럼, 마치 진보정권과 척을 지는 진보언론으로 오해를 받아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한겨레를 비난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 한 기자가 ‘문빠’라는 공격적인 표현을 사용해 신문사가 공식 사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문 대통령이 먼저 이념과 진영논리를 넘어선 포용과 협치 정치를 구사하면서 민주와 진보 가치를 실현하는 길로 나서고 있다. <한겨레>는 진영과 싸우면서 어느새 진영논리에 빠지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자성할 것은 자성하고, 인내와 겸허의 자세로 ‘민주, 민중, 민생’의 창간 정신으로 거듭나는 진보언론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겨레 사랑은 남다르다. 창간 당시 한겨레 부산지사장이었고 창간 발기인부터 시작해서 창간 주주, 독자, 창간위원 등 ‘창간’자가 들어간 일은 다 했고 그 기억을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침 창간 29돌을 맞은 5월15일치 <한겨레>의 1면 기사는 ‘국정농단 수사 이영렬 중앙지검장 ‘조사 대상’ 안태근과 부적절 만찬’ 특종으로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의 불씨를 지폈다. 문 대통령과 한겨레는 어떤 진영에 있지도 않고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진보와 정의, 개혁, 공동선의 가치를 향해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한겨레신문 창간 29돌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