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에 맞선 인권 변호사,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 동료 변호사 5명을 극우세력의 테러로 잃은 아픔, 늦깎이 나이에 정치인으로 변신, 과감한 개혁과 피부에 와닿는 진보적 정책으로 사람들의 삶과 정치를 바꿔놓고 있는 사람.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마누엘라 카르메나(73) 시장 이야기다. 얼핏 문재인 대통령의 이력을 떠올린다.
카르메나는 마드리드 법원장과 스페인 사법부 최고기구 대변인을 지낸 여성 법조인 출신이다. 꼭 2년 전인 2015년 5월 지방선거에서 좌파연합 ‘아오라 마드리드’의 후보로 당선했다. 보수우파 거대정당인 국민당은 24년 만에 스페인 심장부에서 패배했다. 국민당은 1936년 쿠데타로 집권한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독재정권에 뿌리가 닿는 현 집권당이다. 젊은 시절 카르메나는 프랑코 정권에 맞서 싸우다 투옥된 이들의 변론을 도맡았다. 독재가 무너진 뒤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판사들’ 모임의 창설에 참여했고, 약자들의 인권 보호와 공직사회의 부패 척결에 온 힘을 쏟았다.
시장 취임 뒤에도 특권과 권위를 내려놓고 낮은 걸음을 걷는다. 시장의 전통적 특권인 오페라 하우스와 투우장 무료 입장권을 거부하고, 부유층 전유물이던 시 소유 골프장을 대중에 개방했다. 관용차 대신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시민과 만난다. 공감과 정의감을 강조하면서도, ‘감정적 복수’와 폭력에는 반대한다.(<바꾸어라, 정치>, 푸른지식)
그는 지난해 <가디언> 인터뷰에서 신생 좌파정당의 승리 요인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기성 정치권의 부패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 그리고 스페인 민주주의의 젊음이다. 그는 그러나 정치와 민주주의에 시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위정자들이)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적 인기나 대중의 일시적 감정만을 연료 삼은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조일준 디스커버팀 기자 iljun@hani.co.kr
2015년 5월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좌파연합 ‘아오라 마드리드’의 후보로 수도 마드리드 시장에 당선한 마누엘라 카르메나의 망중한.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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