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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한빛 어머니가 김군 어머니께 / 김혜영

등록 2017-05-22 18:28수정 2017-05-22 18:53

김혜영
티브이엔(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고 이한빛 피디 엄마

김군 어머님!

오는 5월28일이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김군을 잃으신 지 어느새 1년이 되는군요. 일 년 전, 아들 없는 삶은 숨을 쉬어도 죽은 삶이라고 하신 김군 어머님의 울부짖음에 함께 울면서,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시겠지 했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저도 아들을 잃었습니다. 아들은 티브이엔(tvN)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일했던 이한빛 피디입니다. 자신이 고민해온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멋진 작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청률 경쟁에 혈안이 되어 구성원을 존중하지 않고 도구화하는 드라마 제작 환경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입사 9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후 회사의 공식사과와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엄마로서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지난 4월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불쑥불쑥 울음이 복받칩니다. 그리움을 떠나 사무쳐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세월은 위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우리 가족에게 시간은 멈췄고 인간적인 삶은 불가능했습니다.

어머님은 아들을 책임감 있게 키운 것이 후회된다고, 끼니 굶어가며 일하는 줄 알았더라면 아들에게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라고 자책하며 힘들어하셨습니다. 사고 이후 김군의 가방에서 컵라면이 발견됐지요. 저도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한빛아, 거기 아니면 네 꿈을 펼칠 곳이 없겠니? 그냥 나와. 넌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으니까 기회는 많을 거야”라고 강하게 말할 것입니다. 물론 한빛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냥” “혼자만”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걸 저는 압니다.

어머님께서는 아들이 속 깊고 착한 아이였고 엄마에게 뽀뽀하며 힘내라고 말하는 곰살맞은 아이였다고 행복해하셨지요. 그래서 더 힘든 시간을 보내시겠지요. 한빛도 엄마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김군 이야기도 한빛한테 들었습니다. 안전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고, 또 엄마는 교사니까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젊은 아들이 기특했습니다. 최근에는 한빛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 저도 어머님처럼 아들에게 갚을 것이 많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일찍 퇴근했기에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구의역에 갔다. 막차가 올 때까지 자릴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하고 현장을 떠났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짜증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솟구쳐 머리가 아팠기에. 역사를 빠져나왔다.

구조와 시스템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죽음이란 비참함. 생을 향한 노동이 오히려 생의 불씨를 일찍, 아니 찰나에 꺼뜨리는 허망함. 이윤이니 효율이니 헛된 수사들은 반복적으로 실제의 일상을 쉬이 짓밟는다. 끔찍한 비극의 행렬에 비록 희망을 노래하는 이가 없을지라도 염치와 반성은 존재할 것이란 기대도 같이 스러진다… 얼굴조차 모르는 그이에게 오늘도 수고했다는 짧은 편지를 포스트잇에 남기고 왔다. ‘오늘’이라 쓰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기에 오.늘.이라 힘주어 적었다.”(한빛 페이스북 2016년 5월31일)

어머님, 저는 한빛을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자신이 없지만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님도 소중한 아들 김군에게 받은 기쁨과 희망을 다 갚으며 또 그 힘으로 살아야 하니 마음은 아파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저에게 하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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