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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5] 내 인생의 조율사 / 김완

등록 2017-05-10 18:16수정 2017-05-10 21:24

애들이 모두 잠들고 난 뒤 우리의 밤은 종종 낮보다 뜨거웠다.
애들이 모두 잠들고 난 뒤 우리의 밤은 종종 낮보다 뜨거웠다.
김완
한겨레21부 디지털팀

울프짐431. 친구 15명과 차린 우리 박스의 이름이다. 크로스핏을 하다 만나 어쩌다 보니 박스를 너무 좋아하게 됐고 아예 박스를 차려버리기로 한 열다섯 남자들은 너와 내가 차린 박스가 너무 좋아서 오픈 초기 박스에서 자고, 마시고, 뒹굴고, 게임하고 하여간 그 공간에서 웬만하면 할 수 있겠다 싶은 일들을 다 해나갔다. 그동안 어떻게들 참고 살았나 싶기도 했는데 그래도 그 박스가 거기 있고 아무도 우리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 것이 또 너무 좋아 가끔 감격까지 했다.

모든 순간 운영이 마냥 평탄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누군가 청소하지 않으면 먼지 한 톨도 사라지지 않았고, 전기 용량이 부족하거나 벽에 습기가 차오르는 등 예상치 못한 관리의 문제들이 시시각각 벌어졌다. 제아무리 박스가 좋은들 그 문제를 실시간으로 해결할 순 없는 생활인이었던 우리들은 그럴 때마다 쩔쩔매야 했다. 그나마 어떤 일이 벌어진 상황은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하면 됐다. 정작 문제는 정말 별것 아닌데 미묘하게 의견이 갈릴 때였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될 것 같은데 누군가들이 말로 부딪히면 그걸 조율하고 정리하는 문제가 때때로 발생했다.

아무 때나 운동할 수 있다는 점은 박스를 차리고 가장 만족한 부분이다.
아무 때나 운동할 수 있다는 점은 박스를 차리고 가장 만족한 부분이다.
인터넷을 설치할 것이냐 말 것이냐. 샤워실에 어떤 물건들을 비치할 것이냐, 이런 문제들을 결정해야 할 때 이상하게 충돌했다. 문제를 정리하고자 정관을 정하고 운영 규칙을 정리할 때도 각자의 경험에 따라 바라보는 게 달라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논쟁이 오갔다. 다행히 서로 멱살을 잡을 수준까지 갔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헌신적인 누군가들이 그 조율을 맡아 애썼다. 사람이 모여서 해야 하는 일에 비법은 없다. 누군가의 이타적 활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야말로 모든 공동체가 유지되는 가장 절대적이고 강력한 비법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을 데려와 이렇게 멋진 극장도 만들어줬다.
아이들을 데려와 이렇게 멋진 극장도 만들어줬다.
물론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언제나 딱 한마디였다. “언제 운동이나 같이 하자.” 그 한마디로 많은 것들을 삭이고 다독여 넘겼다. 채팅방에 “○○○이랑 운동하고 있어요”란 글이 올라오면 너나없이 ‘부럽’을 달았다. 나는 보통 유부남들과 애들이 모두 잠들고 난 뒤 은밀하게 모여 육아의 어려움을 바벨로 주고받았다. 그 ‘심야 유부 클럽’의 수다로 일상의 위기를 몇 번은 넘겼던 것 같다. 쳇바퀴 돌리는 일상을 툭 끊어낼 공간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됐다. 덕질기를 쓰는 동안 몇몇 분이 비슷한 공간을 꿈꿨다며 부럽다고 격려해줬다. 그때마다 대답해주지 못했지만, 당신도 차릴 수 있다. 그게 무엇이건 언제건.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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