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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임기초 한·미 정부가 북핵 고리를 풀 기회다

등록 2017-05-08 17:44수정 2017-05-09 09:39

북핵 개발 30년 동안 그 실마리를 풀 4번의 기회는 모두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뤄졌으나, 역대 미국 행정부의 임기 말과 겹치는 불운으로 좌절됐다. 처음으로 미 행정부가 임기 초에 해결 의지를 보이고, 한국의 새 정부도 이에 호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조성되고 있다.

오늘 자정이면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맞게 된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의 행정부는 유례없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의 국정공백 속에서 방치된 북핵 위기는 한반도의 미래 운명을 가름하는 최우선 과제이다.

북핵 위기가 이렇게 악화된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북한에 대해 관여와 개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북관계가 파탄났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부터 가시화된 북한의 핵개발 30년은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악화되면 핵개발이 가속화되는 역사였다. 북핵 문제를 해결할 기회는 지금까지 모두 4차례가 있었다.

첫째, 노태우 정부 때인 1992년 북한과 미국이 공식적으로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 최초의 북-미 고위급 회담이었다. 이는 북방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한 노태우 정부가 북한과 역사적인 남북관계 합의서를 채택하는 성과 속에서 한 달 만에 이뤄졌다. 앞서 미국도 한반도에서 전술핵무기를 철수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호응했다. 1년 전 소련과 공식 수교하고 중국과 무역대표부를 교환한 한국에 발맞추어 북한도 미국·일본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핵개발을 포기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보다는 핵 사찰을 우선시하여, 회담이 싸늘하게 끝났다. 아버지 조지 부시 행정부로선 사회주의권 붕괴 등 국제 현안이 산적한데다, 임기 말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둘째, 1994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 및 제네바 합의이다. 미국한테 바람을 맞은 북한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뒤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이는 1994년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위협으로까지 가는 전쟁 분위기로 고조됐다. 위기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김일성 면담으로 일거에 해소됐고, 남북한은 정상회담을 약속했다. 하지만, 김일성이 급사했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제네바 합의도 3주 뒤 있은 미국 중간선거에서 40년 만에 다수당으로 오른 공화당의 강경 매파들이 문제 삼으며 사실상 사문화됐다. 이는 북한이 1998년 광명성 1호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미사일 능력 개발로 이어졌다.

셋째,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추진이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빌 클린턴 미 행정부도 11월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조정관으로 임명하고, 북한의 핵 폐기와 미-북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페리보고서를 채택했다. 2000년 6월15일 남북 정상회담 뒤 조명록 북한군 차수가 방미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했다. 클린턴 대통령 방북을 통한 북-미 수교가 눈앞에 어른거렸으나, 그해 11월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북-미 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임기 말에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선 시간적 한계가 컸다.

넷째,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조지 부시 행정부가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했던 움직임이다. 2003년 취임한 노무현 정부는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행정부를 달래려고 이라크 파병을 결단하는 한편 남북관계 개선을 꾸준히 추진했다. 이는 북한을 6자회담에 참가시키고 2005년 북핵 문제 해결의 기술적 과정을 담은 9·19 성명으로 결실됐다.

9·19 성명 하루 만에 미국이 북한 자금을 동결한 방코델타아시아 사건, 이에 대응한 2006년 10월 북한의 첫 핵실험으로 인한 위기 고조는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로 돌파구가 열렸다. 부시 행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채근 속에서 2007년 임기 말에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까지 거론했다. 부시 행정부 역시 너무 늦은 임기 말이었다. 버락 오바마 새 행정부는 북핵에 대한 ‘전략적 인내’라는 무시 정책으로 돌아섰다.

북핵을 풀 수 있는 4번의 기회는 모두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노력 때문이었으나, 역대 미국 행정부의 임기 말과 겹치는 불운으로 좌절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임기 초에 북핵을 대외문제의 최우선 사안으로 설정했다. 이전 행정부에서 볼 수 없던 적극적 자세로 ‘최대한 압박과 관여’ 전략을 표방했다. 북핵 개발 30년 만에 미국 행정부가 임기 초에 해결 의지를 보이고, 한국의 새 정부도 이에 호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조성될 수 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한국의 새 정부가 담대하게 이 도전에 응전해 기회를 살려야 한다.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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