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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4] 울부짖음의 열망 / 김완

등록 2017-05-03 18:58수정 2017-05-03 21:22

그라피티도 직접 했다. ‘울프짐 431’.
그라피티도 직접 했다. ‘울프짐 431’.
김완
한겨레21부 디지털팀

300만원씩, 15명. 4500만원으로 박스를 차리겠단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우선, 조합원 중 한 명의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서울 변두리 지역 공동화에 따른 임대 부진을 틈타, 싼값에 지하를 임대한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 남은 3500만원 가운데 2000만원을 한도로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 최대한 세련되게, 가능한 한 그럴싸하게 그러나 비용은 최소화하기 위해 거의 모든 걸 몸으로 때운다. 그리고 나머지 금액으로 바벨, 플레이트, 풀업바(턱걸이대) 등을 사고, 설치한다. 곧 죽어도 ‘간지’를 포기할 순 없으니 어떤 장비들은 특정 브랜드의 것을 산다.

아무렇게나 누워 낄낄거리다 미친 듯 운동하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꿈을 이루는데 1인당 300만원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업소용 맥주 냉장고도 들였다.
아무렇게나 누워 낄낄거리다 미친 듯 운동하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꿈을 이루는데 1인당 300만원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업소용 맥주 냉장고도 들였다.
이 가운데 그나마 순조로웠던 것은 임대차 계약밖에 없었다. 인테리어는 대개의 공사가 그렇듯 모든 것이 난관이었다. 가장 논란은 샤워실의 설치였다. 운동 후 샤워의 쾌감을 포기할 수 없다는 ‘세신파’와 어차피 조합원들은 다 박스 근처에 사니 집에 가서 샤워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불가파’가 맞섰다. 세신파는 다시 남녀가 칠세 부동석한데 남녀 샤워실을 따로 설치해야 한다는 원리주의자들과 우리 박스는 ‘남자들의 놀이터’일 뿐인데 그것은 과잉 설비라는 실리주의자들로 나뉘었다. 결국 범세신파가 다수파가 되었는데, 실리주의자들은 박스에 여자 사람이 없는데, 그 여성용 샤워실 청소는 누가 할 것이냐는 논리마저 관철시켰다.

장비 구입은 합의가 어렵진 않았다. 운동은 ‘장비발’이라는 공통의 감각 속에 민주주의의 원리보다는 능력주의의 위계가 작동했다. 운동을 제일 잘하는, 무게를 제일 많이 들어본 이들의 주장이 쉽게 관철됐다. 일단, 바벨은 ‘로그’(Rogue)가 우선 고려됐고, ‘언더아머’(Under Armour) 줄넘기와 ‘트리거 포인트’ 폼롤러 등의 액세서리가 추가됐다. 장비를 들이던 날, 시공업체 대표가 “이렇게 좋은 박스에서 왜 영업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냥, 이 박스 하나, 장비 하나가 꼭 갖고 싶었습니다. 그뿐입니다.’

작은 못 하나까지 다 직접 박았다.
작은 못 하나까지 다 직접 박았다.
박스 이름을 지을 땐, 온갖 아무 말 대잔치가 열렸다. 조짐, 다짐, 가짐, 퍼짐 등 짐 자로 끝나는 거의 모든 말들이 경합했다. 막판엔 울부짐이 급부상했다. ‘애둘빠’의 울부짐, 그래도 형은 결혼이라도 하지 않았느냐는 울부짐, 나는 왜 취업 안 되느냐는 울부짐, 오픈만 하면 밤새 테킬라를 마시며 플레이스테이션을 돌리겠다는 울부짐. 그 모든 울부짖음의 열망을 모아 결국 울프짐으로 결정됐다. 그렇게 운동장인지 탈출구인지 놀이터인지 모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 시작됐다.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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