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은
문화부 대중문화팀
고백하자면, 이 글은 반성문이다. 지난해 10월 스스로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피디. 일면식도 없던 그의 죽음에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낀다. 유서에 이렇게 썼다. “하루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내가 가장 경멸하는 것이기도 했다. 방송사를 출입하면서 놀랐던 것은 그들의 ‘노동 문제 불감증’이다. ‘열정 페이’를 논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비판하던 방송사는, 정작 스스로가 거대한 비정규직 백화점이었다. 프로그램별로 많게는 100명 가까이 되는 스태프 중에서 정규직은 피디 몇 명뿐이었다. 이 피디가 참여한 <혼술남녀>도 피디 네 명만 정규직이다. 보통 나머지 스태프는 하청업체(카메라팀·조명팀 등), 파견노동자(에프디 등), 프리랜서(작가 등) 등 모두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주제작이 일반화된 현 시스템에서 단순히 ‘비정규직’인 것을 문제 삼기는 애매한 측면이 있다. 방송국의 권력 독점을 막으려면 외국처럼 편성권만 갖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외주 인력 중에서 베테랑 고참급은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 능력에 따라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맡을 수도 있다.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방송연예계”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그렇다고 원칙 없는 계약과 과도한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할까? 이 피디가 가슴 아파했던 것 중의 하나도, 방송사가 관리자라는 이유로 입맛대로 주무르는 부당한 갑을 관계였을 것이다. <혼술남녀> 쪽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촬영 중간 외주업체들을 하루아침에 잘랐다. 선지급한 돈까지 일부 돌려받으려고 했다. 방송사가 뉴스에서 비판해온 일들을 앞장서서 행했다.
하루 서너시간밖에 못 자는 과한 노동 환경도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스태프들은 촬영이 시작되면 서너 달 인간 이하의 삶을 산다. 밤을 새우기 일쑤이고, 길바닥에 앉아, 벽에 기대어 쪽잠을 청한다. 잡일까지 도맡는 막내의 노동강도는 더 세다. 막내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열정 페이’ 논란도 늘상 벌어진다. 하청업체들은 막내급을 한시적인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 인력으로 충원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가 돈을 많이 받아도 막내급은 월 150만원, 많아야 200만원 정도다. 3개월 꼬박 잠 못 잔 대가다.
방송사도 스태프도 노동 환경과 처우의 문제점을 잘 안다. 외주화가 시작된 2000년대 이후 끊임없이 지적돼 왔지만, 바뀌지 않는 것이 문제다. 외주화를 되돌릴 수도 없고, 작품이 끝나면 여유도 있는, 일반 회사와는 다른 특성이 이들을 체념하게 한다. 다행히 몇 해 전부터 현실적인 대안을 찾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전 제작을 일반화하고, 촬영 시간에 제한을 두는 등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5년에는 언론노조 산하 ‘미디어 비정규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이 출범하기도 했다.
이 피디 가족들은 회사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한다. 씨제이이앤엠 관계자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찾으면 있다. 업종별로 처한 상황과 고용 형식 등을 조사해야 한다. 방송제작 표준계약서에 분야별로 임금 단가와 각종 수당, 촬영 시간 등을 자세하게 명시하고 지키는 게 시작이다. 이를 토대로 하나하나 만들어가면 된다. 그게 이 피디와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일 것이다.
방송사는 겉으로는 아주 화려한 곳이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가 가장 깊게 투영된 곳도 그곳이다. 눈감으면 안 보인다. 피디 어머니의 눈물이 잊혀지지 않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