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
한겨레21부 디지털팀
왜 숱한 결심, 무수한 자기 학대, 만만치 않은 비용 지불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강력했던 마음들은 모두 사라지고 모든 운동은 끝내 실패하고 말았는가. 결혼 이후 비교적 최근에 했던 것들만 따져 봐도 러닝, 스쿼시, 헬스, 수영, 농구, 요가 등 대여섯 가지가 넘는다. 대체로 얕고 느슨했다. 의무감으로 드나들기만 했다. 어느 종목도 3개월을 못 넘겼다. 그렇게 살을 빼고 싶고, 몸을 만들고 싶은데, 도대체 왜.
기본적으로는 귀찮아서다. 그런데 이건 방어할 수 있다. 귀찮음은 한국 사회 특유의 바쁨과 연결된다. 노동만 해도 과해서 지치는데 운동까지 넘치게 할 수 있는 여건은 늘 안 된다. 개개인들의 귀찮음은 일종의 ‘시발’ 감정이다. 어쩔 수 없이 마련한 방어책이다. 이불 밖이 다 위험한데, 일하고 운동까지 하면 생존이 경각에 달릴지 모른다는. 중요한 건 외로움이다. 늘 생각했다. 외로워야 운동일까, 천 번 혼잣말을 해야 끝나서 운동은 천벌인 걸까. 맞다. 외로웠던 거다. 그 외로운 시간이 두려워서 포기했던 거다.
풀업(턱걸이)을 하다 다친 사람의 쾌유를 기원하며 함께 열었던 ‘이현진배 풀업대회’.
햇수로 5년째 포기하지 않고, 마음 맞는 이들과 체육관까지 차려 크로스핏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간단하다. 외롭지 않아서. 같이 힘드니까 나만 천벌 받는 것 같진 않아서. 그렇게 꼭 운동만 하는 것도 아니어서. 크로스핏은 ‘박스 플레이’를 기본으로 한다. 박스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이 크로스핏의 요체다. 전 세계 모든 크로스핏 박스들이 공통적으로 ‘박스 커뮤니티’를 운동 성공의 관건으로 꼽는다. 박스는 누가 바벨을 더 잘 들고, 어떤 사람의 근육이 더 발달되었는가를 겨루는 공간이 아니다. 크로스핏에 있어 박스는 도전이건 실패건 함께 했고, 같이 쓰러졌다가, 맥주 한잔 마시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집합적 공간이다.
크로스핏을 처음 시작하고 박스에 가는 게 그냥 좋았다. 제 한 몸 가눌 길이 묘연해 쓰러지는 느낌도 물론 좋았고, 기행에 가까울 정도로 운동 잘하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그것보다는 새벽시장의 활기처럼 펄떡이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유약한 일상에 뭔가 당당한 존재감이 불어넣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취했던 것 같다. 운동을 잘하고 못하고는 한참 뒤의 문제고, 박스에 간다는 사실 그 자체에 고무됐다. 뭐랄까, 공간의 취향이 그대로 나의 활기로 전환되는 것 같았달까. 물론, 그 마음 맞는 사람들과 ‘운동장’을 차리는 건 돈이 제법 들었지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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