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에디터 몇년 만에 국제뉴스팀에서 다시 일하게 되자마자, 북핵·미사일을 둘러싼 한반도 긴장 고조라는 익숙하지만 힘겨운 상황이 닥쳐왔다. 물론 이번에는 트럼프라는 만만찮은 변수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정상회담 와중에 시리아에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을 했고, ‘거짓말로 드러난’ 칼빈슨 항공모함 전단 한반도 이동을 “무적함대”라며 한껏 부풀리고, 아프가니스탄에 핵무기 다음가는 강력한 폭탄을 투하해 군사력을 과시하며, 연일 “북한과 관련해 모든 카드가 테이블 위에 있다”고 선제공격 가능성을 암시했다. ‘곧 전쟁이 나는 게 아니냐’는 공포감은 대중들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메시지다. 그런데 6~7일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풍향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면, 미국은 중국에 무역·경제 분야에서 양보를 하기로 ‘빅딜’이 이뤄졌다는 것을 미국 정부가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중국이 반대하는 대북 선제타격 등 군사적 방안은 잠정 유보할 테니, 중국이 나서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해보라는 타협이다. 중국이 즐겨 쓰던 ‘오랑캐를 이용해 오랑캐를 제어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미국이 채용한 셈이다. 취임 전부터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예고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을 순식간에 뒤집은 미-중의 기묘한 협력 구도가 만들어졌다. 왜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 뒤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한국은 실제로 중국의 일부였다더라”는 발언을 했다.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중국과 한국의 수천년 역사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반도 문제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생각인지, 시진핑 주석이 그런 역사 인식을 밝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보고 중국이 한국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북핵 문제 해결을 맡겼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중국 역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서 ‘이이제이’ 전술을 활용했다. 미국이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미사일방어(MD) 체계의 핵심인 사드 엑스밴드 레이더를 한반도에 배치하기로 하고, 박근혜 정부가 급작스럽게 밀실 결정을 통해 이에 동의한 뒤, 중국의 보복 조처는 한국에 집중됐다. 한-미 동맹 가운데 한국에 보복의 초점을 맞춰 미국을 움직이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왜 이런 결과가 빚어졌을까? 이명박근혜 정부 9년 동안 한국 정부는 북한붕괴론이란 환상에 기대어,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는 협상 없다’는 고집만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거나 속도를 늦출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한-미 동맹은 물샐틈없이 굳건하고, 미-일 동맹보다도 더 높은 수준이라는 자화자찬성 발언으로 미국에만 기댔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사실상 포기, 사드 배치 밀실 결정, 일본의 사과 없는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등 이해할 수 없는 외교·안보 정책을 해온 결과 미·중 정상이 두는 장기판 위의 졸이 되어버렸다. 한반도에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데도 아무런 발언권도 없는 초라한 처지만 남았다. 결국 전운이 고조되는 한반도 위에 엉킨 매듭을 풀고 장기판 졸의 처지에서 벗어나야 할 책임은 한국의 새 정부에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트럼프의 예측불허 스타일, 군사적 방안도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다는 미국의 태도를 고려하면 시간은 많지 않다. 미-중의 타협으로 실낱처럼 열린 외교의 공간 앞에서, 한-미 동맹과 한-중 협력의 균형을 잡고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우리 국익을 분명히 계산해 미·중 모두와 담판을 지을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강경론이나 사드 찬성만이 안보라고 주장하는 가짜 안보에 속지 말고, 이곳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진짜 안보를 요구해야 하는 우리의 과제가 절박하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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