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라이프 에디터 조홍섭 기자라고 있다. 알 만한 사람은 그를 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일부 있다는데, 내가 섭섭할 지경이다. 국내 첫 과학언론을 표방한 <과학동아>의 1985년 창간 멤버이고, 국내 첫 민주언론 <한겨레>의 1988년 5월 창간 주역이다. 창간호 기사에서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의 환경파괴를 다룬 이후 과학·환경·생태를 오가며 고발의 정신과 교양의 풍모를 겸비한 환경전문기자 1세대의 대표 격이 됐다.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전문기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상 첫 한국 기자였다고 평해도 넘치지 않는다. 나는 그를 ‘선배’라 부른다. 선배라 부를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조홍섭 선배는 1997년 가을 <한겨레> 공채 평가위원이기도 했다. ‘당시 응시생 안아무개를 꼭 뽑아야겠다는 평가위원이 있었고, 절대 뽑지 말아야 한다는 평가위원도 있었다는데, 선배는 어느 쪽이었느냐’고 얼마 전 술자리에서 물었더니, 즉답을 한사코 피했다. 웃으며 꼭 한마디만 했다. “그때만 해도 다들 어리바리했어. 허허.” 어리바리하여 낙방이 마땅했던 신참 기자가 어느덧 에디터(옛 부장)를 맡았는데, 선배는 지난 3월 정년퇴임해버렸다. 이런저런 일로 3년6개월 만에 신문사 편집국의 말석 에디터로 돌아왔더니, 선배의 자리는 비었고, 선배의 말과 글만 남아 있었다. 에디터 일을 시작한 첫날, 점심 먹고 신문사 근처 효창공원을 걷는데, 그가 예전에 일러준 공원의 생태 이야기를 사람들이 전했다. 그 가운데 산수유 꽃도 있었다. 그 노랗고 작고 예쁜 것이 생강나무 꽃과 어찌 다른지 설명해주었다는 것이다. 나로선 산수유 꽃을 알아보게 된 것부터 감격스러웠다. 지금까지 그저 풀숲 덩어리의 공간이었던 공원에서 노란 꽃을 피우고 붉은 열매를 지어 올리는 산수유의 처지를 챙겨보는 재미가 생긴 것이다. 전문가는 응당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한다. 전문가는 산수유 꽃을 생강나무 꽃과 구분하여 살펴보는 사람이다. 여기에 더하여, 전문가의 식견으론 지당한 이치를 귀찮아도 끈기 있게 찬찬히 설명해주는 사람이다. 덩어리의 세상에서 개별을 추려내는 사람, 개별의 특성을 파악하여 전체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돕는 사람, 그 변증의 섭리를 모든 이에게 알려주는 사람. 나를 불합격시키려 했던 게 아닌지 끝내 말해주지 않은 그 술자리에서 그는 붉은 얼굴로 이런 말도 했다. “작은 것에 집중하는 게 우리 일이야. 싸구려가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거지.” 싸구려는 곧잘 덩이를 말하며 늘상 뭉치고 가른다. 그걸 피하려고 고군분투하면 전문가가 된다. 그의 말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여러 에디터의 일원이 되어,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있다. 누구의 편이냐고 따지는 이들에게 누구의 편도 아니고 오직 사실의 편이라고 항변하는 처지로 지내야 하는 시절이다. 사소한 빌미, 최초의 오해, 이어지는 단정, 굳어지는 편견 등을 거쳐 네 편과 내 편의 덩이와 뭉치를 판가름하는 돌팔매를 맞기도 한다. 그 와중에 전문가를 다시 생각한다. 작은 일에 집중하여 사실을 장악하되, 낮은 목소리로 끈질기고 꾸준하게, 배척당할지언정 분명하게 말하여, 덩이와 뭉치 이면의 세밀함을 드러내는 전문 기자의 실력과 소명을 생각한다.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선배라고 있다. 싸구려가 되기 싫은 이들이 그를 따라 과학·기술·환경·생태·동물 등의 전문기자가 되려고 노력해왔다. 그들과 함께 새로운 일을 준비하려고 과학·기술 섹션 ‘미래’를 잠시 접는다. 다시 돌아와 그 일을 돕겠다고 조홍섭 선배도 에디터에게 약속했다. 덩이와 뭉치의 대선이 끝나면, 산수유 꽃과 생강나무 꽃을 구분하여 살피는 기사를 들고 다시 찾아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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