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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무한도전>과의 재회 / 허문영

등록 2017-04-07 18:08수정 2017-04-07 21:15

허문영
영화평론가

나는 <무한도전>의 오랜 팬이었다. 이 오래된 티브이 예능프로의 팬들은 유난히 극성스러운 데가 있어 ‘무도충’이라고 놀림당하기도 하지만,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불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지면의 칼럼을 쓸 때 몇번 소재로 다뤘고, 민망하지만 5년 전에는 100장 분량의 글을 써 평론집에 싣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뜸하게 보기 시작했고, 최근 2년간은 거의 보지 않았다. 이 예능프로가 나빠졌기 때문은 아니다. 상식적인 의미로는 훨씬 더 좋아졌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크고 어른스러워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커졌다. 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에는 동네 꼬마들과 주부들 30여명이 하품을 하며 앉아 있었지만, 2015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는 수만명이 몰려와 열광했다.

주로 어이없는 유머와 헛소동으로 채워지던 <무한도전>은 덩치가 커지면서 ‘의미있고 중요한’ 일을 점점 더 많이 해왔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제도로 보이기 시작했고 때론 일종의 문화권력으로 비치기도 했다. 내 속의 한심하고 미숙한 아이가 한때 그들의 어이없는 유머와 정신 나간 헛소동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그들이 뭔가 어른스러워지기 시작하자 조금씩 마음이 멀어졌던 것 같다. 건전한 어른과 정반대 편에 있던 ‘돌+아이’ 노홍철이 그만둔 것도 그맘때 있었던 일이다.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간 곳이 교실임을 알게 된 아이, 작은 술집 무대라고 생각하고 간 곳이 거대 공연장임을 알게 된 아마추어 가수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 여린 정형돈이 자진 하차한 것에도 비슷한 마음이 조금은 작용했을 거라고 막연히 짐작한다.

지금 <무한도전>의 권력은 출연진도 김태호 피디도 원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인기, 넓고도 강력한 팬덤, 한번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벼락스타로 만드는 영향력이 그들의 운신을 얼마간 불편하게 만들었고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게끔 이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철없이 같이 놀던 친구가 갑자기 어른이 되어 멀어졌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지난 토요일 <무한도전>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7주간의 휴식 끝에 나온 ‘국민의원 특집’ 편이었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국민의원 200인, 국회의원 5인이 함께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이 원하는 법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고, 자유한국당의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다. 물론 재미있고 건강하고 의미있는, 그리고 예상대로 가장 어른스러운 방송이었다.

보면서 반갑고도 허전했다. 여전히 이런 티브이 프로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내가 그리워하는 옛 <무한도전>과는 이제 작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앞으로는 ‘전국 돌+아이 콘테스트’ 같은 정신 나간 특집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어쩔 수 없이 어른의 역할을 더 많이 해나갈 것이다.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이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철없는 아이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 소란스런 이해관계 속에서 어른의 역할을 떠맡았을 때 감수해야 할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무한도전>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자신의 권력을 좋은 일에 쓰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오늘의 한국에서 계몽가의 역할을 자임하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무한도전>만큼 효과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젠 그들의 선량하고 힘겨운 분투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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