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지난 3월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세월호 인양, 미수습자 수습, 선체 조사의 쟁점 토론회’에 참석한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인양이란 단지 “다 낡아빠진 그 철덩어리를 건져 올리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수습자 아홉 명을 찾고 침몰의 진상을 밝힐 때 비로소 인양이 끝난다는 것이다. 207번째로 수습된 학생의 아버지인 장훈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은 세월호 선체에 “아이들이 맨 마지막에 살려고 발버둥치던 모습”이 남아 있다고 호소했다. 아이의 마지막 자취를 담은 세월호에 구멍을 뚫고 이곳저곳을 잘라내는 정부를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정부는 세월호 인양의 의미를 다르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3월27일 역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수습의 원칙과 방안’이라는 제목의 세미나에서 유해 발굴 전문가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세월호 안에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오랜 시간 물에 잠긴 유해의 상태를 분석한 해외 연구를 소개한 후 박 교수는 발표 자료에 이런 당부를 담았다. “유해 수습은 뼈 한 조각이라도 놓치지 않는다는 자세로 임해야 하며, 수습 전 과정에서 유해에 손상을 가할 수 있는 어떤 행위도 조심하여야 한다.” 박 교수는 또 유해 수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사진 촬영이라고 말했다. 각 단계마다 기록을 남겨두어야 유해 분석과 신원 확인 과정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전사자와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 발굴을 맡았던 박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청중은 종종 한숨을 내뱉었고, 세미나는 박수 없이 끝났다. 세월호를 물에서 건지고 목포신항으로 옮겨 육상 거치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전문가 조언은 도달하지 못했다. 작업에 걸림돌이 된다 싶으면 서슴없이 구멍을 내고 자르는 동안 세월호는 ‘다 낡아빠진 그 철덩어리’ 취급을 받았다. 수백 개의 바퀴를 단 모듈 트랜스포터가 얼마나 정밀하게 세월호를 옮길지, 로봇캠을 어떻게 배 안으로 투입하여 수색할지 홍보하는 중에 세월호는 마치 정부의 대형사업 실적이 된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동물뼈 발견 소동의 전말은 영상기록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인양 과정을 비판하는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에게 이철조 세월호현장수습본부장은 “계획된 공기 안에 인양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지만(<한겨레> 보도), 그 합리적 판단은 전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를 ‘다 낡아빠진 그 철덩어리’로 대하는 태도는 이 사건을 ‘일종의 해양 교통사고’로 규정하려던 시도와 닮았다. 이미 3년이나 지난 교통사고의 흔적을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치우려는 의도가 보인다. 배 안을 샅샅이 뒤져 마지막 한 명까지 찾아낼 수 있는 눈과 손과 마음을 갖추고서 제대로 교육을 받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모든 작업을 거침없이 진행했다. 반면 수색 중 발견한 휴대전화는 유가족이 분석한다고 나서기 전까지 방치했다. 이러다가 곧 배를 다 훑어보았으니 사건을 마무리하자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세월호를 2014년 4월16일에 상황이 종료된 교통사고가 아니라 훨씬 오래전에 시작해서 아직도 진행 중인 사건으로 보는 사람들은 선체조사위원회를 세월호 조사의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세월호 선체는 사고로 망가진 기계의 잔해가 아니라 망가진 사회를 다시 일으킬 실마리를 품고 있는 현장, 그 안에서 죽어간 사람과 남은 가족을 이어주는 공간이다. 선체 조사는 참사의 중요한 사실을 밝혀줄 수 있지만 배 안에 우리가 찾는 모든 진실이 다 들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체조사위의 시선은 배 안에만 머물지 말고, 3년 전 배를 침몰시킨 모든 힘과 3년 동안 배를 물속에 가두어 놓은 모든 압력을 좇아 밖으로 옮겨가야 한다. 재난 조사에는 과학적 데이터와 사회적 내러티브의 결합이 필요하다. 선체를 과학적으로 조사하여 얻은 데이터와 선체 밖에서 벌어진 온갖 일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써낼 때 세월호 참사는 비로소 그 전모를 드러낼 것이다. 선체를 인양하기도 전에 강제 종료된 세월호 특조위가 활동을 재개하고 그 이야기로 새로운 보고서를 써야 한다. 그때 세월호는 ‘다 낡아빠진 그 철덩어리’가 아니라 이 시대를 증언하는 기억과 배움의 현장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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