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지난 토요일 목포신항에 다녀왔다. 목포역에서 택시를 탔을 때 기사님이 물었다. “세월호 보러 오셨어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는 묘한 어긋남에, 다시 우리 앞에 놓인 숙제를 깨닫게 됐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미수습자를, 진실을. “아홉명 다 나와야 돼. 다 찾아야 돼.” 미수습자 가족이 주문처럼 되뇌는 말에는 불안함을 지우기 위한 절박함이 묻어 있다. 진도체육관을 맴돌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내가 되면 어떻게 하지?” 3년이 되도록 이 질문을 버릴 수 없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심정을 차마 헤아리기 어렵다. 아마 유가족들이 그 마음을 가장 가깝게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먼저 유가족이 되어 겪은 서러움과 아직 유가족이 되지 못해 겪은 서러움이 서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정부는 참사 이후 수중수색을 할 때도 주먹구구식이었다. 아무도 없다고 확인한 구역에서 미수습자가 발견되기도 했다. 인양 선언 후로도 그랬다. 유가족이 수중 영상을 공개하며 유실 방지 조처가 부실한 것을 지적하자 그때야 유실 방지를 위한 예산을 배정했다. 해양수산부 앞으로 찾아가 항의를 하면 경찰을 앞세워 내쫓았다. 인양 계획에 대해 유가족에게 제대로 설명 한번 하지 않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보를 내놓으라고 하면 묵묵부답이었다. 유가족들로서는 정부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미수습자 가족들은 믿어야 했다. 해수부의 미적거리고 못미더운 태도에 울분이 쌓여도, 인양이 될 거라고, 미수습자를 꼭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음을 지켜야 했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으므로. 정부는 유가족의 참관을 제한하고 인양 과정에 참여를 배제하면서 ‘미수습자 수습’이 우선이라는 핑계를 내세운다. 이간질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정부는 마치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인 것처럼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을 가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기원하는 미수습자 수습이 이루어지고 나면 미수습자 가족을 기다리는 자리는 유가족의 자리다. 참담한 진실을 외면한 채 정부가 마치 수습만이 자신의 역할인 것처럼 제한할 때의 의도는 분명하다. 정부로서는 ‘할 만큼 했다’는 종지부를 찍고 싶은 것이다. 국제인권법은 ‘피해자’의 권리를 강조한다. 국가에 의해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국가는 대체로 책임을 은폐하고 부인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의 권리 회복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처들을 제시한다. 사실의 검증과 진실의 완전한 공개, 시신의 수색과 신원 확인, 피해자 및 그와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들의 존엄과 권리를 회복시키는 공식적인 선언 또는 사법적 결정, 사실 인정과 책임의 수용을 포함한 공식적 사과… 침몰하는 배에서 아무도 구하지 않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 앞에 놓인 숙제는 그대로다. 끝은 우리가 정한다. 작년 8월 정부는 인양 후 선체 절단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그것이 빠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빨리’가 중요한 만큼 ‘샅샅이’도 중요하다. 미수습자를, 찾을 때까지 찾아야 한다. 미수습자를 찾기 위해 선체를 ‘샅샅이’ 뒤지는 과정은 선체 조사와 구분될 수도 없다. 앞으로 모든 순간이 단 한번의 기회다. 실수가 없으려면 원칙을 세우고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피해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자신의 의무를 깨닫기 바란다.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의 참여, 모든 과정의 기록,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원칙으로 삼을 때 우리가 만날 수 있다, 미수습자도, 진실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