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기자 보수정당은 비유하자면 5년 만기 회사채로 운영돼 왔다. 백년정당이 꿈이지만 신용도가 불확실해 대선 두번 치를 10년 이상짜리는 발행할 생각도 못한다. 수익률은 딱히 좋지 않아도 지역적으로 영남, 세대로는 60대 이상, 이념적으로 반공에 기반한 표심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왔다. 이자는 색깔론으로 간간이 챙겨줬다. 만기가 돌아와도 원금을 돌려준 적이 별로 없다. 대신 그럴듯한 약속을 다시 하며 새 채권을 차환발행해 만기를 연장해 왔다. 2012년의 박근혜라는 담보물은 아주 매력적이어서 너도나도 만기 연장을 반겼다. 보수정당 지지층을 유가증권에 비유하자면 채권형에 가깝다.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하며 사고파는 주식형이 아니다. 수익은 낮을지 몰라도 안정적이기를 바란다. 지난해 4·13 총선을 전후로 당의 신용도가 곤두박질쳤다. 수익률 전망도 엉망으로 나왔다.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던 투자자들도 화가 단단히 났다. ‘내 돈(표) 가지고 적당히 장난치라’는 것이다. 급기야 담보물 박근혜가 역대급 부실 담보로 판명됐다. 최순실이라는 숨겨진 부실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보수정당이 박근혜를 담보로 표를 끌어모은 기간이 햇수로 18년이다. 그런데도 최순실의 존재는 아무도 몰랐단다. 장부에서 분 냄새가 물씬 난다. 제대로 된 회계감사를 받아본 적이 없거나 모두가 분식의 공범이라는 얘기다. 원금까지 까먹기 시작하자 투자자들도 이번에는 정신이 바짝 들었나 보다. 장롱에 묻어뒀던 채권을 뒤져 조기 상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2인자라는 대손충당금을 쌓아두지 않았으니 보수정당 비상경영체제는 언감생심이다.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은 비유하자면 한국 정치라는 지주회사를 구성하는 자회사들이다. 연결재무제표로 봐야 이익과 손실이 명확해진다. 박근혜로 상징되던 낡은 보수가 망했다고 고소해하는 이들이 많은데, 보수의 부채와 손실이 청산되지 않고 장기화하면 진보의 부실로 이전된다. 정치학자들이 “건강한 보수가 발언권을 가져야 왼쪽에서 하는 이야기들도 훨씬 더 정제되고 현실성을 갖춘다”고 말하는 이유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는 여전히 블루오션이다. 냉전반공보수, 지역할거보수, 재벌중심시장보수만 있었을 뿐 이념의 다양성, 법에 의한 지배, 공정한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제대로 보여준 보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보수 담론의 재구성이 필요한데, 바른정당이 그걸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친박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출생증명은 될지언정 정치적 시민권은 되지 못한다. 따뜻한 보수, 개혁적 보수, 염치를 아는 보수를 내세운 대선 후보 유승민의 “안보관”, “대북관” 타령은 그래서 듣기에 불편하다. 안보는 보수와 진보 모두의 가치이지 유승민 혼자 해석하고 독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바른정당은 보수의 스타트업이 될 수 있다. “우리 당은 작아서 여러 정치실험이 가능하다”는 정치적 비전은 투자를 부르는 무형의 담보다. 바른정당의 성공은 여전히 강경·극우라는 레드오션을 서성이는 자유한국당에도 자극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는 정당정치가 아닌 태극기 부대와 경쟁해야 한다. 보수정당의 재기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의 정치적 성장판도 두드릴 것이다. 반대로 보수의 실패와 촛불의 승리에 기댄 손쉬운 정치는 진보의 동반부실을 부를 것이다. 바닥을 치고 또 쳤으니 이제는 오를 일만 남았다. 가치투자를 할 만한 보수정당이 먼저 있어야 워런 버핏형 유권자가 나온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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