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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대우조선의 진실도 인양해야 / 정세라

등록 2017-03-26 17:50수정 2017-03-26 19:07

정세라
정책금융팀장

대우조선해양이 또다시 침몰 위기에 섰다. 크나큰 배가 이토록 기울기까지 선장 자리에서, 선주 자리에서, 감독당국 자리에서 꼬박꼬박 월급과 이익을 챙기던 이들은 제 몫을 하지 않았다. 물새듯 밀려드는 손실을 ‘분식회계’로 덮어버리고, 쉬쉬하며 방조하고, 뒷짐 지고 먼 산 보며 감독을 소홀히 했던 이들의 면면이 세월호 때만큼이나 또렷하다.

정부는 국책은행을 통해 대우조선에 2조9천억원짜리 마이너스 통장(마통)을 열어준다는 신규 지원안을 발표했다. 2015년 10월에 청와대 서별관회의라는 밀실논의를 통해 4조2천억원짜리 마통을 열어준 지 1년 반 만에 이를 거의 소진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주무를 맡은 금융당국은 이런 ‘거대한’ 침몰 사태를 국민 앞에 보고하면서 언론 보도를 두고 ‘소소한’ 숫자놀음 신경전을 벌였다. 책임자들이 발표 당일 오전에 ‘2조9천억원’이란 숫자를 내세우며 짐짓 침통하게 머리를 숙였지만, 언론들은 ‘대우조선에 퍼부은 돈이 6조원이다, 7조원이다, 13조원이다’ 질타했기 때문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발표날 오후 언론을 상대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13조원 지원, 6조원 지원 등 숫자가 난무한다. 신규 지원은 2조9천억원이다. 2조9천억원은 출자전환이다. 자제해 달라. 기존 채권이 주식으로 바뀌는 것(2조9천억원 출자전환)은 계정상 변화에 불과하다. 보태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실 임 위원장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언론이 충격을 부풀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정부가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본은 5천억원 남짓으로 바닥인데, 금융채무는 21조6천억원으로 천문학적이다. 은행권에 진 빚이 18조원이고,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 비은행권에 진 채무가 3조6천억원이다. 엄청난 빚을 졌으니 당장 만기가 돌아오는 급한 채무를 막고 이자를 갚아나가는 게 쉬울 리 만무하다. 신규 주문이라도 많으면, 선수금을 받아 운영자금도 쓰고 금융비용도 쓰련만…. 지난해 수주 실적은 참담하게 바닥을 기었다. 1년 반 전에 4조2천억원짜리 마통을 뚫고도 순식간에 돈이 말라서, “송구합니다”를 외치게 된 배경이다.

그래서 들고나온 게 채무 재조정 카드다. 이런 빚을 지고는 마통을 새로 뚫어줘도 기업이 지속 불가능하니, 채무를 좀 탕감해주자는 얘기다. 그래서 3조8천억원을 채무 조정 대상으로 삼았다. 2조9천억원은 사실상 탕감해서 대우조선 주식으로 바꿔주고, 나머지 9천억원은 1% 초저금리로 채무 만기를 연장해주자 했다.

출자전환이란 어떤 의미인가? 2015년 4조2천억원 마통을 뚫어 돈을 빌려줬다가 3조2천억원을 출자전환 등 자본확충으로 바꿔준 국책은행의 일원인 산업은행은 지난 연말에 주당 4만원대로 떠안은 대우조선 신주를 주당 1원으로 대거 손실처리했다. 거래정지된 대우조선 주식가치를 ‘휴지 조각’으로 보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울며 겨자 먹기로 이런 출자전환에 또다시 몸을 던져야 할 주요 채권자들이 국책은행,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이다. 국민의 신규 부담은 2조9천억원 플러스알파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말바꾸기 과오를 시인하면서 구조조정의 방향타를 다시 크게 틀었다. 이제 신규 지원안이 채권자 동의를 얻을 것인가와 아울러 대우조선 침몰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차근차근 따져가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 송구하다는 말로 그냥 묻어두기엔 국민이 져야 할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 대우조선 부실의 인과와 책임 소재 등 진실을 저 바닥까지 살펴 철저히 인양해야 하는 이유다.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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