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지역에디터
“테니스 엘보네요.”
내 팔꿈치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의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지난해 여름 왼손 팔꿈치가 아파 정형외과를 갔다 받은 뜻밖의 진단이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테니스 채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테니스 엘보라니요?”
‘참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의사가 설명했다. “꼭 테니스를 하지 않아도 일이나 운동을 심하게 하다 팔꿈치가 상하는 경우가 있어요.”
나는 지난해 여름 한동안 샌드백을 세게 친 적이 있다. 주먹으로 샌드백을 강하게 치면 팔꿈치가 바늘에 찔린 듯 아팠다.
당시 나는 권투 도장에서 20대들과 스파링을 하면 속절없이 맞기만 했다. 아무리 스파링이라도 맞으면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다. 나는 ‘더는 맞고 살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20대의 기술과 체력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나는 10대 맞으면 1~2대 겨우 때리는 상황이었다.
왼손 팔꿈치가 아파 팔꿈치보호대를 차고 상대 주먹을 막기 위해 가드를 올리고 있다.
나는 상대방의 우위 전력을 피하면서 약점이나 급소를 공격하는 비대칭 전략을 택해 ‘백배 천배 복수하겠다’고 결심했다. 마치 경제력이 바닥난 북한이 전차나 야포 같은 재래식 무기가 아닌 핵무장에 나선 것과 비슷하다. 나는 훅이나 카운터펀치 같은 큰 것 한방으로 전세를 뒤집기로 마음먹었다. 권투 연습을 할 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주먹을 휘두르는 팔 동작도 커졌다. 샌드백을 칠 때마다 요란하게 퍽~퍽~ 소리가 나면 그동안 스파링 때 맞아서 생긴 스트레스도 풀렸다.
한동안 이렇게 어깨에 힘주고 무리하다 테니스 엘보에 걸렸다. 반년가량 왼손으론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었다.
테니스 엘보로 고생하면서 권투를 잘하려면 어깨 힘부터 빼야 한다고 새삼 깨달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동작이 지나치게 커져 빠르게 움직이는 상대를 제대로 맞힐 수 없다. 무게중심이 흐트러진다. 권투 펀치력의 뿌리는 주먹이나 어깨의 힘이 아니라 하체와 무게중심 이동에서 나오는 힘이다. 동양 무예 이론은 사람의 몸을 삼절(초절, 중절, 근절)로 나눈다. 손과 팔은 초절이고 허리는 중절, 다리는 근절이다. 초절은 일어나고, 중절은 따르고, 근절은 이를 쫓는다. 다시 말해 손과 팔이 일어나면 허리가 따르고 다리가 이를 받쳐준다.
골프에도 ‘힘 빼는 데 3년’이란 말이 있다. 수영, 스키를 배울 때도 강사가 ‘힘 빼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모든 운동이 그렇고 인생과 세상만사도 그렇다. 5월이면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어깨에 힘 뺀 대통령을 보고 싶다.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