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3월21일부터 일본기원 관서총본부에서 일본판 알파고 ‘딥젠고’(DeepZenGo)와 한·중·일 대표 기사가 참가하는 ‘월드바둑챔피언십’이 열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국 대표는 박정환 9단이다. 박정환은 한국 랭킹 1위이며, 포석과 전투와 끝내기에 모두 능해 인간 알파고라고도 불리는 1993년생 청년이다. 나는 박정환의 팬이 아니다. 그의 바둑에는 스타일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을 몇번 들었던 탓인지 그는 “특별한 스타일이 없는 게 내 스타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듣고 스타일이란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바둑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스타일을 지닌 사람 가운데 하나가 ‘우주류’(宇宙流)로 유명한 일본 기사 다케미야 마사키다. 목진석 9단은 “수십년 뒤 바둑사에 남을 기사 중 첫손가락에 꼽힐 인물이 다케미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바둑은 집이 많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런데 다케미야는 집을 짓기 가장 어렵다는 중앙에 웅장한 세력을 쌓아 집을 짓는 전무후무한 기풍으로 한 시대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다케미야는 왜 그런 어려운 길을 택했을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바둑을 두는 것은 인생살이와 같다.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많다. 예를 들어 유쾌한 삶이나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 등이다. 반상에서 나타나는 것도 이치는 똑같다고 느낀다. 당연히 실리를 차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간명함, 기쁨, 쾌락이 우주류 속에 있다.” 간명함, 기쁨, 쾌락. 그가 이 단어들을 정확히 무슨 뜻으로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로선 이렇게 이해하고 싶다. 최선-진리-완전으로 가는 길이 정해져 있으면 아무리 험해도 그 길로 가면 된다. 하지만 그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남들이 가본 길을 택하지만 또 누군가는 자기만의 길을 개척한다. 후자의 선택이 스타일을 낳는다. 어떤 길도 불확실하고 결함이 있으므로, 선택의 기준은 효율성일 뿐만 아니라 결함이기도 하다. 어떤 결함을 짊어지고 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 선택이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것을 빚어낸다. 그러므로 스타일의 중핵은 효율성이 아니라 그 결함에 있다. 스타일은 ‘룩’(look)과 같지 않으며, 최선-진리-완전의 영원한 미결이라는 숙명 앞에 놓인 한 인간의 단독성이 새겨진 어떤 몸짓이고 어떤 형식이다. 수전 손택이 “스타일이 곧 영혼”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결함으로 알려진 것을 선택한 무모한 자가 가장 위대한 자의 반열에 올랐을 때 우리는 감동받으며, 그것이 많은 바둑애호가들이 다케미야의 우주류에 매혹된 이유일 것이다. 많은 바둑애호가들이 그렇듯 나는 이세돌의 팬이기도 했다. 이세돌은 쉽게 이길 수 있는 국면에서도 피투성이 전투를 피하지 않아 고난을 자초하는 미치광이 전사와도 같았고 그 난폭한 기풍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런 불세출의 영웅이 최강의 효율성으로 무장한 인공지능 앞에 무참하게 무너졌다. 지난해 열린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아마도 바둑사에서 스타일 시대의 종식 선언이기도 했을 것이다. 박정환은 이세돌과도 다른 세대에 속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에이아이(AI) 바둑을 잘 활용한다면 사람의 바둑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의 선택 기준은 결함이 아니라 효율성인 것 같다. 아마도 구세대적인 취향에 속할 스타일과 결함에 대한 향수는, 이 젊은 영웅의 시대엔 이젠 묻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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