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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이 중앙에게] 친박 토호, 끝내 사람 잡았다 / 김수민

등록 2017-03-15 18:09수정 2017-03-15 21:01

김수민
전 구미시의원·녹색당

3월1일과 11일, 촛불집회에 참가하러 지나는 길에 두 차례 친박 집회를 가까이에서 구경했다. 불어나던 인파를 오로지 ‘일당’이나 ‘수구 대형교회’, ‘자유총연맹’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 동원 구조는 풀뿌리까지 뻗어 있다. 화염병을 던져 계엄령을 유도하자는 자유한국당 신무연 강동구의회 의원의 메시지는 돌발적으로 우연하게 나온 게 아니다.

원래 구미 지역 정가와 박근혜의 사이는 그리 긴밀하지 않았다. 2002년 지방선거 때 박근혜씨 주도로 창당한 한국미래연합은 구미에서 아무 성과도 올리지 못했다. 토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큰물’을 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그러다 박근혜씨가 당대표에 올라 선거를 지휘한 2004년 총선부터 이 지역 토호와 박근혜의 관계는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조순제씨가 표현했듯) “고기가 땅에 있으면 물만 보면 찾아가듯이 딱 그런 관계”가 되었다. 박근혜는 어차피 큰물을 탔고, 토호들과 그 정치적 대표자들은 그 아버지의 고향이 구미라는 고리를 통해 붙어서 따라가면 그만이었다. 그들에겐 참으로 좋았던 시절이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전면화된 지난해 10월 말, 그들은 일단 납작 엎드려야 했다. 전국의 친박 토호들 중에 최순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거나, 나아가 접촉했던 사람이 있는지는 조사해볼 일이지만, 알든 몰랐든 간에 ‘없는 것처럼 되어 있는 사람’이 나타난 건 커다란 충격이었다. 더구나 최순실의 태블릿으로 대통령 연설문이 흘러갔고, 박근혜는 그 연설문대로 읽었다. 박근혜의 무식함을 변호하기는커녕 대화 주제로 올라오는 것도 막았던 이들은 처음 며칠간 급소를 얻어맞은 것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박정희 탄생 기념행사에서 구미시장 남유진씨도 해마다 내뱉었던 ‘박정희는 반인반신’이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침묵으로 넘어가기에는 사태가 범상치 않게 돌아갔다. 실상 지역 토호의 독자적인 정치력은 예상보다 강력하지 않다. 특히 다원화(나쁘게는 파편화)된 도시 지역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큰물’을 타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그런데 여당이 추락한다. 분당까지 겪었다. 그들은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패망하는 싸움에서도 자산은 챙겨야 했다. ‘망한 부잣집에도 남아 있는 게 있다’며, 금고 비밀번호를 지어내 온 동네에 불러줬다. ‘가짜뉴스’. 그들에게는 세월호 유가족과 야당 정치인들을 음해하면서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 조직망을 가동한 전력이 있었다.

그들에게 ‘미르+케이재단’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정치인이 업체의 이권을 보장해주고 자신의 경제적·정치적 기반을 챙기는 건 지역사회에서 흔한 풍경이다. 무엇이 잘못인지 따질 필요도 없었고, 논쟁할 수준도 되지 않았다(박근혜가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덜 해먹었다’는 흰소리도 나왔다. 글쎄, 박정희보다 ‘덜 해먹은’ 건 확실하다). 그들은 그래서 ‘태블릿 조작설’에 집중했다. 그러는 동안 자유한국당은 일찌감치 대선 레이스에 돌입했고 다들 ‘박근혜 다음’을 계산했다. 토호들도 어차피 탄핵은 인용된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러나 어리석은 군중은 멋도 모르고 처절하게 희망고문 당했고, 3월10일 끝내 친박 시민의 난동에 친박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친박 토호 및 지역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인정하며 날뛰는 이웃들을 나무라고 달래는 대신, ‘이대로 밀리면 내년 지방선거부터 박살난다’는 탐욕과 집착으로 친박 집회를 이용하다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자초했다.

친박 집회에서 울려퍼지던 군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친박단체는 사상자들을 넘고 넘어 순식간에 ‘대선 모드’와 야당 준비에 돌입하는 분위기다. 초반의 눈치보기를 깨고 수차례 친박 집회에 참석했던 남유진 구미시장은, 박근혜 파면 직후 “탄핵선고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낯빛을 싹 바꿨다. 같이 사고를 쳤는데, 누구는 죽고 누구는 퇴학당하고 누구는 교실로 들어간다. 태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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