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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배제와 이름 / 이해성

등록 2017-03-15 18:08수정 2017-03-15 21:06

이해성
광장극장 블랙텐트 극장장, 극단 고래 대표

세월호 희생자, 해고노동자, 일본군 성노예, 국가폭력 피해 생존자, 장애인, 성소수자…. 이름이 지워진 채 뭉텅이로 취급당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지칭하는 말들이다.

박근혜, 김기춘, 김종덕, 조윤선, 송수근, 박명진, 김세훈 등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던 예술가들의 이름을 배제시킨 사람들의 이름들이다. 그중에 박근혜는 탄핵되었고, 김기춘 김종덕 조윤선은 구속되었다. 송수근은 장관 대행으로 영전하여 더 큰 권한을 가지게 되었고, 국정감사에서 위증까지 했던 박명진은 여전히 건재하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인사권을 행사하고 지원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김세훈 영진위 위원장은 형식적인 사과조차 없이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그 외에도 범죄행위에 묵인 방조 내지는 동조한 이름이 많이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헌법을 유린한 행위이다. 하지만 박근혜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김기춘은 검열이 불법인 줄 몰랐다고 하고, 조윤선은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더해서 송수근은 문체부 이름을 빌려 1급 이하의 공무원들에게 면죄부를 주며 셀프검열방지대책을 마련하겠으니 넘어가자고 하고, 박명진은 문예위 이름 뒤에 숨어 용기가 없었다며 자리를 뭉개고 앉아 있다. 그 외에도 범죄행위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고 있다. 그들의 이름이 부역자라는 뭉텅이로 거론될 때, 선한 사람들은, 그 사람 좋은 사람인데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애가 둘이나 있다 힘없고 불쌍한 공무원들이라며 면죄부를 주자고 한다.

범법행위 근절 대책은 범법행위에 대한 적법한 처벌일 것이다. 범법행위를 처벌하지 않고 봉합하려 한다면, 누구나 언제든 자신의 사익을 위해 범죄행위를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래의 범죄를 용인하는 행위이다. 한 개인에게 낙인을 찍거나 고통을 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원칙대로 하자는 얘기다.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라도 사익을 위해서 공익을 저버린 자신의 선택이었다. 명백한 헌법유린 행위이고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름은 존재를 이르는 말이다. 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세상에 존재한다는 선언이 이름일 것이다. 어떠한 존재이든 세상으로 불려나왔을 때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 가치에 이르는 것이 이름이다. 그 이름이 지워진 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집단명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받았고, 받고 있고, 받을 고통을 생각해 보자. 그들도 좋은 사람이었고 가정이 있었고 애가 둘이나 있었지만, 가정은 풍비박산 났고 아이들이 죽어갔고 차가운 겨울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그들은 리스트조차도 아니다. 개인의 실존은 사라지고 뭉텅이로 불리며 사회적 불이익과 고통을 감당하고 있다. 왜 그들의 이름이 배제되었는가. 대통령을 비롯한 공무원들과 준공무원들이 헌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제된 이름을 되찾기 위해 일상을 포기하고 찬바람 몰아치는 광장에서 겨울을 보낸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범법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한 자리에 앉아서 검열방지대책을 세우겠다고 예술정책을 얘기하자고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송수근, 박명진, 김세훈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1급 이하 공무원과 준공무원 중에서도 명백하게 검열행위를 수행한 사람들은 처벌받아야 한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국정원도 조사하여야 한다. 그것이 검열방지대책이다. 어설픈 화해와 봉합은 또 다른 범법행위이다. 이제는 원칙대로 하자. 국회는 국정감사를 열어서 블랙리스트 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방지법을 제정하고, 검찰은 검열행위를 철저히 수사하고 부역자를 처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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