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은 받은 사람의 죄가 더 무겁다.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도 받고 있다. 반성의 기미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법처리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직후 한 신문은 사설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검찰의 수사 방침에 적극 협조해 진상을 낱낱이 밝혔으면 한다”고 했다. 검찰에는 불구속 수사를 요청했다.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구속돼 수의를 입은 모습을 본다는 것은 국민으로서도 수치스럽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일리가 있는 제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불구속으로 진행하다가 법정구속하거나 형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뒤에 엄정하게 집행해도 된다.
탄핵 이틀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삼성동 집으로 돌아갔다. 네 마디를 내놓았다. ‘저에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임기를 못 마쳐서 미안하다는 뜻이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탄핵반대 집회 참가자들에게 고맙다는 뜻이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어쨌든 탄핵은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 나는 잘못이 전혀 없고 억울하다는 뜻이다.
최순실씨는 다음날 재판에서 “제가 안고 갈 짐을 안고 가겠다”고 했다. 삼성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특검이 억지로 (혐의를) 씌우는 것”이라고 했다. 역시 억울하다는 뜻이다. 두 사람의 말이 많이 닮았다.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를 저질러놓고 잘못이 없다고 박박 우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이나 생각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담배가 건강에 나쁘다고 생각하는 흡연자가 담배를 끊거나 ‘담배는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국정농단 행위를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없는 처지다. 따라서 자신들의 행동이 정말로 정당했다고 자신들을 속이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 것 같다. 참 편리하다.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진상규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본래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었을까? 사죄와 화해의 정치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4년 6월 그는 한나라당 대표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보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머리를 숙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라고 감격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공식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태도를 180도 바꿨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기조는 증오와 배제였다. 역사교과서가 좌편향이라며 국정화를 시도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탄압했다.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서 쫓아냈다. 박근혜식 적폐청산이었다.
증오와 배제의 국정 기조 뒤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국정 사유화 및 농단이 자행됐다. 탄핵 사태의 근본 원인은 바로 자신의 절대화, 타인의 철저한 배제였다.
검찰이 피의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21일 소환을 통보했다. 남은 순서는 검찰의 피의자 신문, 구속영장 청구,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구속 수감, 구속 기소, 재판이 될 것 같다.
어느 신문의 칼럼니스트는 “그만큼 했으면 분이 풀릴 만도 한데 그를 굳이 법정에 세우는 것은 대선에도 안 좋고 나라 안정에도 안 좋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법처리에 반대하는 것이다. 어림도 없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뇌물을 받은 사람이다. 뇌물을 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미 구속됐다. 뇌물은 받은 사람의 죄가 더 무겁다.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도 받고 있다. 반성의 기미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법처리는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국가적 범죄나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되는 진실화해위원회라는 기구의 이름에 ‘진실’과 ‘화해’가 들어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철저한 진실 규명과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가 있어야 용서와 화해도 가능한 것이다.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