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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닥치고, 검사! / 이춘재

등록 2017-03-14 18:11수정 2017-03-14 19:22

이춘재
법조팀장

자녀가 공직에 관심이 많거든 꼭 검사를 시킬 것을 권한다.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유능한 경제 관료 같은 것을 기대했다간 혹시라도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지 모른다. 무슨 소리냐고? 변양호 전 보고펀드 대표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례가 보여준 씁쓸한 현실이다. 둘은 모두 공직자로서 성공한 길을 걸었다. 행정고시 수석합격과 사시 최연소 합격, 깔끔한 일처리와 카리스마,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존심까지 스펙과 스타일 모두 비슷하다. 하지만 화려한 공직 생활 뒤 받게 된 검찰 수사에서 둘의 처지는 극명하게 갈린다.

변 전 대표는 2006년 ‘현대차 부채 탕감 로비 의혹’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으로 검찰의 집요한 수사를 받았다. 긴급체포로 시작된 그의 수난은 3번의 영장실질심사와 142번의 재판, 292일간의 수감생활 등 무려 4년여 동안 이어졌다.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는 평생 쌓아온 명예를 포함해 많은 것을 잃었다. 당시 대검 중수부 검사들은 변 전 대표를 잡기 위해 그야말로 혈안이 돼 있었다. 론스타나 외환은행 쪽과 연결될 만한 인맥은 물론 그가 자주 다니던 술집까지 모든 게 탈탈 털렸다. 무죄 확정 뒤 사석에서 만난 그는 “검사들의 기세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내 변호사가 조사 입회를 꺼릴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변 전 대표 수사를 지휘했던 이가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성공리에 마친 박영수 특별검사다. 대검 중수부장이었던 그의 지시에 따라 변 전 대표를 직접 수사한 검사는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장관 등을 줄줄이 구속해 주가를 올린 특검팀이 유독 우병우 전 수석만 놓친 것은 쉽게 납득이 안 된다. 이들이 10여년 전 ‘변양호 수사’에 들였던 공의 절반만 쏟았어도 우 전 수석은 지금쯤 수의를 입고 있을 것이다.

특검팀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과 딱 맞아떨어진다. 그가 검찰 출신이 아니라면, 그에게 신세진 검사들이 요직에 포진해 있지 않다면, 과연 그가 검찰에 이어 특검의 ‘칼’까지 무사히 피할 수 있었을까. 특검팀 안에서 그의 수사를 두고 파견 검사들과 변호사들 간에 알력이 있었다는 얘기가 들린다. 지난해 우 전 수석을 수사했던 검찰 특별수사팀은 아예 봐주려고 작정한 듯 수사의 기본인 통화내역 조회도 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우병우 라인’으로 분류되는 윤갑근 대구고검장은 특별수사팀장을 맡을 때 “나도 검사다”라며 의지를 보이는 척하더니 흐지부지 수사를 끝냈다. 그는 왜 통화내역 조회를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리고는, 지금도 국민 세금으로 꼬박꼬박 월급을 챙기고 있다.

우 전 수석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던 지난해 7월부터 석달 동안 무려 1천회 이상 그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난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은 한술 더 뜬다. 수사기밀 유출 의혹과 함께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위증(‘우 전 수석에게 보고한 적 없다’고 증언) 논란까지 불거졌는데도 여전히 건재하다. 검찰이 아니라면 과연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최근 판사들의 사법개혁 학술행사 축소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산 대법원 고위 간부는 진상조사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직무에서 배제됐다. 이미 구성원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이 정도로 끈끈하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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