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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여왕’의 몰락 / 조일준

등록 2017-03-12 16:37수정 2017-03-12 21:51

2013년 11월 영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오른쪽)이 유럽 순방길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함께 왕실 마차를 타고 만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 누리집 갈무리
2013년 11월 영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오른쪽)이 유럽 순방길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함께 왕실 마차를 타고 만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영국 <데일리 메일> 누리집 갈무리
2017년 3월10일 대통령에서 ‘파면’된 박근혜씨는 한국 ‘앙시앵 레짐’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가 재임 4년 13일 동안 보여준 언행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 직분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제왕적 군주제의 완고한 여왕에 가깝다. 지성·판단력·공감능력이 결여된 자리는 시대착오적 권위주의로 채워졌다. 그의 이름에는 불통·무능·독선·부패 같은 불명예스러운 낱말들이 따라붙었다. 유난히 잦았던 외국 순방은 수백벌의 맞춤옷과 어설픈 실수, 변기와 화장대 세트만 세간의 화제가 됐다. ‘외화내빈’의 극치였다.

그가 누린 최고의 호사는 임기 첫해인 201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청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일 것이다. 여왕의 공식 칭호는 ‘신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그 밖의 왕국과 영토의 여왕, 영국연방의 수장, 신앙의 수호자이신 엘리자베스 2세 폐하’다. 여왕이 1년에 두 차례만 직접 주관하는 ‘국빈 방문’(State Visit)은 공식 방문(Official Visit)보다 격이 훨씬 높은 최고 수준의 의전과 예우를 받는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박 전 대통령의 이력엔 겹치는 게 있다. 여왕은 10살 때 부친(조지 6세)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왕위 계승 서열 1위 공주가 됐다. 1952년 부친의 서거로 26살에 왕위를 이어받았다. 바로 그 해에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났다. 그도 10살 때 부친 박정희가 쿠데타에 이어 대통령(권한대행)을 꿰차면서 ‘공주’가 됐다. 또 22살 때 모친의 피살 사건으로 ‘퍼스트레이디’ 자리를 이어받았다. 권력에 다가설 수 없었던 몇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는 것도 닮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의 태도와 행보는 좀체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말년의 차이는 더욱 크다. 한쪽은 여전히 당당한 기품으로 영국인의 존경을 받는다. 다른 한쪽은 최후까지 국민의 자존심을 뭉개며 반면교사의 유물로 남게 됐다.

조일준 국제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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