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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5·18을 품은 헌법을 위하여 / 박구용

등록 2017-02-28 18:25수정 2017-02-28 18:47

박구용
전남대 교수·시민자유대학 이사장

대선 전 개헌은 가능한가? 정치적 논리론 가능하다. 정당 간 이해관계만 조정되면 대선과 함께 국민투표를 시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국민주권의 논리를 농락하는 직업 정치인들의 계산일 뿐이다. 이 나라 주권자가 개헌의 뜻은 세웠다지만 아직 방향까진 정하지 않았다. 주권자의 ‘지금-시계’는 탄핵과 적폐 청산, 그리고 정권교체를 기준점으로 돌고 있다. 이 시점에도 주권자는 광장 안팎 곳곳에서 개헌을 예비한다.

‘나라 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이하 ‘주권회의’)도 촛불 속에서 하나의 헌법 개정안을 선보였다. ‘주권회의’ 안은 기본권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권의 담지자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꾼 것, 사회적 약자들(여성, 어린이, 청소년, 노인, 장애인, 망명자 등)의 기본권을 추가한 것,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한 것은 놀라운 성과다. 물론 ‘주권회의’가 제안한 이원집정부제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더구나 중앙패권에 종속된 지방자치단체를 입법과 재정 권한을 가진 지방정부 체계로 바꾸지 못한 것은 분권과 협치라는 시대정신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보다 더 큰 아쉬움은 헌법 전문에 대한 개정안이다.

‘주권회의’는 헌법 전문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부분을 “4·19 혁명 및 6월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고쳤다. 이렇게 되면 4·19는 혁명이 되고, 6·10은 3·1 독립운동과 함께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사적 뿌리로 승인된다. 그런데 어디에도 5·18은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 의견도, 한 토막 이견도 없다. 이렇게 5·18을 무시하고 배제하면서 주권과 인권, 민주와 법치를 함께 키워온 역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헌법 전문은 헌법이면서 동시에 헌법이 아닌 경계의 법문이다. 헌법 전문은 헌법 밖에서 헌법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규제하는 규범이다. 따라서 헌법 전문은 헌법 체계의 두 기둥인 주권과 인권을 키워온 역사로 구성되어야 한다. 5·18은 3월 독립운동과 4월 시민혁명처럼 이미 국가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주권혁명이다. 더구나 5·18 당시 광주는 법의 보호 바깥으로 유폐된 상태에서도 법적 질서를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한 인권과 평화의 시민공동체였다. 5·18 광주는 한 도시의 이름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양심이다. 5·18을 품은 헌법만이 국민통합의 심장이 될 수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그리고 적폐의 공모자들은 주권자의 시계를 멈추기 위해 대선 전 개헌에 핏대를 세운다. 국민의당이 저들과 합의하면 당장 개헌안 발의가 가능하다. 이렇게 발의된 개정안이 대통령 공고(20일 이상) 후 60일 이내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받아 의결된다면 30일 이내 국민투표까지 몰아붙일 수 있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판을 깨고 싶은 세력에겐 막판까지 유혹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국민의당이 이 손길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개헌은 대선 후 적폐 청산의 과제와 맞물려 수행될 것이다.

다당 체계가 지속될지 양당 체제로 회귀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어떤 경우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한패이듯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한 뿌리다. 진보의 뿌리인 통일민주당은 1987년 제9차 개헌 당시 5·18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를 대변했던 민정당으로부터 ‘군의 정치중립’을 약속받는 조건으로 5·18을 삭제하고 만다. 이제 두 당이 함께 그날의 역사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 죽기로 싸우는 중에도 망월동에 이르면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 이것이 역사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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