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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송파 세 모녀의 3주기에 부쳐 / 정세라

등록 2017-02-26 17:40수정 2017-02-26 20:04

정세라
정책금융팀장

한달에 144만7천원을 벌어서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을 떼면 120만1800원을 손에 쥔다. 한달에 나가는 돈이 126만8500원이니 매달 6만6700원이 적자다.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다. 계산기를 두드릴 때 백원 단위 숫자를 ‘버림’하고 싶어도, 그마저도 아쉬운 팍팍한 살림이다. 그나마 1년 새 사정은 더 나빠졌다. 전년도엔 한달 수입도 8만5200원이 많았고, 한달 적자는 2100원이었다. 빚만 30배로 불어난 셈이다.

이 가계부는 누구의 것인가? 우리네 다섯 집 중 한 집의 얘기다. 혼자 사는 가구를 뺀 전국 1390여만가구에서 소득 하위 20%, 이른바 ‘1분위 가구’에 해당하는 집들 얘기다. 대략 670만여명이 여기에 속한다. 1인당 한달 생활비가 52만6300원, 하루 1만7500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나마 이는 홀몸노인 등이 많은 1인 가구 520만여명을 빼고 하는 얘기다. 이 정도의 빈곤은 보기 드문 딱한 사정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널려 있는 ‘흔한 가난’이란 얘기다.

지난해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는 이들을 포함해 우리 살림살이가 얼마나 팍팍해졌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물가상승분을 뺀 소득이 금융위기 여파가 극심했던 2009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안 그래도 빠듯하던 1분위 집의 소득은 전례없이 5.6%나 줄어 폭삭 주저앉은 수준이다.

돈을 써야 경제가 돈다지만 쓸 돈이 없으니 소비도 뒷걸음이다. 사실 다섯 집 중 제일 가난한 1분위 집은 소비를 거의 ‘못’ 줄였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 봐야 나올 게 없는 탓일 것이다. 두번째로 가난한 2분위 집이 허리띠를 제일 졸라맸다. 이 집은 세금 떼고 245만원 남짓을 손에 쥐었다. 1년 새 월소득이 2만3500원이 줄었는데 소비는 매달 8만원이나 줄였다. 평균 잡아 세 식구가 200만원도 안 썼다. 누군가는 아이 학원을 끊었을 것이고, 점심을 편의점에서 때웠을 것이며, 식구들의 낡은 운동화나 외투에는 눈을 질끈 감았을 것이다. 노후도 불안하고, 직장도 불안하고, 건강도 불안했으니 그랬을 것이다. 소득 하위 20~40% 가구에 해당하는 2분위 집, 826만여명의 얘기다.

결국 이들에겐 쓸 돈이 문제다. 금요일 조기 퇴근을 추진한다는 정부의 설레발이 실현된다 해도 쓸 돈이 없고, 쓸 마음의 여유는 더더욱 없다. 콘도값 깎아준다고 여행 갈 수 없는 처지들이다. 정부의 내수활성화 대책은 여러 면에서 맹탕이기도 했지만, 구멍 난 지갑을 채워줄 대책은 도무지 미비했다.

경제성장률이 수년째 2%대에서 머무는 사이에 장기침체의 고통은 모두의 어깨에 균등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임시·일용직 일자리가 가장 많이 줄어들고 이들의 소득은 유례없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일부 사람들의 말처럼 국격이 무너져서가 아니라, 이런 현실이 고스란히 방치되기에 국정공백은 뼈아프다.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가계소득을 끌어올릴 근본 대책을 고민해야 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공공일자리를 만들고 긴급복지를 확대해서라도 매서운 한파를 넘기고 서민들의 생존 불안을 눅여야 한다. 지갑 속에서 사라진 돈 만원, 십만원의 가치는 소득계층에 따라 전혀 다른 고통의 무게를 지닌다. 찬 바닥의 사람들은 끼니를 건너뛰고 난방을 끄는 등 생존에 필수적인 스위치를 내릴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26일은 ‘송파 세 모녀’의 3주기였다. 한달치 월세와 공과금을 흰 봉투에 남기고 뭐가 그리 죄송한 건지, 그저 “정말 죄송하다”는 유언을 남겼던 그들 말이다.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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