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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회장님의 실전 정치학 / 김남일

등록 2017-02-07 18:19수정 2017-02-07 20:26

김남일
정치팀 기자

삼청동 안가를 다녀온 회장님들의 말씀이다.

“정치는 ‘불가근불가원’이다. 돈을 내고 어떤 특혜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다음 정권이 되면 불이익 받는 사례들을 봐왔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내더라도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다.” “오랜 회장 경험으로 깨달았다.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대통령 말씀에 호응해 드리는 것 말고 내가 더 말을 보태서 도움이 된 적이 없다. 그러니 내가 먼저 나서서 말을 꺼낸 것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무에게나 중요한 일을 맡겼다. 리더의 자질이 부족했던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은 항상 크로스체크를 했다고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조사를 위해 검찰청사를 다녀간 재벌 총수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고 한다. 선대 회장 시절부터 그냥 그렇게 돈을 내왔다, 그러니 대가는 바라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불이익을 당할까봐 돈을 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고 하는데, 뭐가 됐든 ‘죄 없는 우리는 돈만 뜯겼다’는 피해자 진술이다.

그나마 연륜이 쌓인 몇몇 회장님은 조사받는 틈틈이 나름의 정치관을 피력했다 전해진다. ‘불가근불가원’이라는 전통의 황금률을 설파한 회장님은, 그러나 박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는 납작 오체투지하며 ‘좌파 정리’를 다짐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니, 내 돈이면 몰라도 회삿돈이라 아까울 것 없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젊어 일찍 물려받은 회장직에서 좌충우돌하던 2세 회장님은 수십년 수련 끝에 ‘침묵은 금’이라는 연금술을 터득했다. 말보다는 다른 게 앞서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라 회장님의 침묵이 깨달음의 결과인지는 알 길 없다. ‘대통령 아버지로부터 사람 쓰는 법을 못 배웠다’며 무릇 리더의 용인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강조했던 회장님은, 정작 그룹 중책을 맡겼던 여식이 ‘역주행’ 사고를 친 탓에 본인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실전’에서 맥을 못 추는 회장님의 정치학이 그룹 신년사들처럼 밋밋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다. 유명한 “정치 4류” 발언 때문이다. 1995년 4월13일,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자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우리나라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 기업 능력은 2류”라고 했다. 한국 풍토에서 재계가 내놓을 수 있는 최대치 발언으로, 아직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재벌 총수 중 김영삼 대통령과 가장 먼저 독대했던 이 회장은,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 허가가 떨어진 뒤에는 “독대도 필요 없고 건의도 필요 없다. 건의는 불평이지 건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격투’에 가까웠던 이 회장의 ‘실전 정치’는 삼성자동차의 운명과 함께 빛이 바랬다.

법조계와 재계에서는 “특검 조사를 받은 아버지의 가신들이 아들을 ‘바지회장’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돈다. 아직까지 결재를 맡길 수 없는 ‘수습 회장’인지라 비선 실세인 최순실의 존재는 밑에서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도 영문 모른 채 ‘깨지고’ 나온 뒤 돈을 뜯겼다는 것이 삼성의 주장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을 막기 위한 방편이거나, 실제 그러하거나, 그 중간 어디쯤일 수 있다.

삼성 3세 이재용과 자수성가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16살 나이차에도 절친이라고 한다. 그 상태가 박 대통령과 비슷해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미국 기업 시이오(CEO)들 중에는 저커버그도 있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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