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세상을 뜬 신영복은 <강의>와 <담론>이라는 강의록 두 권을 남겼다. 20년 감옥살이에서 닦은 사유가 응축된 작품이다. 신영복의 강점은 이론적인 탐구보다는 실천적인 지혜 쪽에 있다. <주역>의 ‘괘’와 ‘효’를 설명하는 중에 이야기하는 ‘자리론’이 실천적 지혜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된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일을 그르친다.” 그렇다면 어떤 자리가 맞는 자리일까? 신영복은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 ‘70%의 자리’를 권한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는 것이다. “30 정도의 여유, 30 정도의 여백이 창조의 공간이 된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가면 어떻게 될까? “그 경우 부족한 30을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거나 권위로 채우거나 거짓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주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어떨까? 대선 행보를 하는 중에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칭송한 전력을 문제 삼는 기자들을 두고 “나쁜 놈들”이라고 막말한 데서 그 사람됨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유엔 사무총장직 수행 이력이 대통령직 수행 능력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신영복은 이런 말을 한다. “자리와 관련해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권력의 자리에 앉아서 그 자리의 권능을 자기 개인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 시절에 벌써 ‘역대 최악’이라는 평을 들은 사람에게 주는 말로 들린다. <주역>은 효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경우를 ‘득위’라 하고 잘못된 자리에 가 있는 경우를 ‘실위’라고 한다. 득위는 아름답지만 실위는 위태롭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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