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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반기문에게 위안부 합의 자꾸 물으면 왜 안되나? / 권태호

등록 2017-01-25 18:28수정 2017-01-25 21:02

권태호
국제에디터

지난 21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의 첫 브리핑. 전날 취임식 보도에 불만을 품은 해군 공보장교 출신인 스파이서 대변인은 “언론보도에 할 말 있다”는 말로 시작해 “역사상 최대 취임식 인파였다”는 일방적 주장을 4분30초 동안 마구 내뱉은 뒤, 질문도 받지 않고 그냥 기자실을 떠났다. 퇴장까지 4분30초.

22일 조간.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쪽 주장 7가지’를 정리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항공사진을 통해 참석 인원은 16만명뿐이라고 분석하면서 “‘내 상사’(대통령)가 시켜서 고함을 지르려고 여기 왔다”는 격이라고 비꼬았다. <폴리티코>는 “지하철 이용객 42만명” 브리핑을 낚아채 “2009년 취임식 110만명, 2013년 취임식 78만명”이라고 비교했다.

23일, 두번째 브리핑은 78분간 이어졌다. 64개 질문을 받았다. 대변인은 “거짓말할 의도는 없었다”며 버벅대다, 궤변을 늘어놓다, 횡설수설했다. 언론 길들이기에 나서려다, 백악관 대변인이 길들여지는 것처럼 보였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백악관 기자실에 처음 갔을 때의 느낌은 ‘이너 서클’에 들어온 이방인 같았던 게 사실이다. 49석 좌석이 간격도 없이 촘촘한데, 다들 ‘여긴 내 자리’라며 밀어내는 통에 그제야 모든 좌석이 지정석이란 걸 알았다. 맨 뒷자리 좁은 틈새에 서 있는데, 일본·중국 기자, 미국 지방지 기자 몇 명이 함께했다. 대변인은 ‘입석’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에이피>(AP), <뉴욕 타임스> 등 앞자리 유력지 기자들만 ‘이름’(first name) 불러가며 몇 번이고 질문권을 줬다. 하지만 질문은 물렁하지 않았고, 답변이 부실하면 똑같은 질문이 몇 번이고 반복됐다.

가끔 국내 기자회견에서 “오늘 주제에 대해서만 질문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한다. 황당하다. 그러려면 보도자료만 돌릴 것이지. 1998년 11월 빌 클린턴과 김대중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엔엔>(CNN) 기자는 클린턴에게 “르윈스키 스캔들”을 질문했다. 일반적이다. 외국에서 다른 나라 정상 또는 장관과의 회담 뒤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그들의 관심’을 물어주는 경우는 없다. 제3국 정상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회견장에 멀뚱하게 서 있는 건 보통이다. 기자들이란 절대 친절하지 않고, 눈곱만큼의 배려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얼마 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28 합의를 집요하게 캐묻는 기자에게 화난 얼굴로 “그 질문엔 더 이상 답하지 않겠다”고 정색할 때 의아했다. 유엔 사무총장 출신이 어찌 저런 반응을. 10년간의 시차와 전혀 글로벌스럽지 않은 언행 등 이도 저도 아닌 모순과 모순이 중첩된 모양새였는데, 나로선 그 반응이 제일 이상했다.

2008년 미 대선을 앞두고 론 네슨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이 대선주자들에게 ‘언론 소통 10계명’을 제시한 바 있는데,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절대 거짓말 말고, 숨기지 말라 △인터넷에 주목하라 △시각효과를 활용하라 △기자에게 잘 알려주라 △‘오프 더 레코드’는 없다 △질문을 잘 들으라 △‘노 코멘트’란 말은 절대 말라 △언론전략을 사전에 준비하라 △방어적 대신 공세적 태도를 먼저 취하라 △나쁜 뉴스는 내가 먼저 말하라 등이다.

새 대통령은 더 이상 ‘어, 그, 저’란 말 하지 않는, 기자회견 두려워하되, 듣기 좋은 질문만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기사를 다 좋아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아첨꾼은 기자의 역할이 아니다. 제게 어려운 질문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 기자회견은 1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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