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팀장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세계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았다는 평가가 많다. 트럼프 스스로 “미국의 외교정책은 예측 불가능해야 한다”며 ‘모호성’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하나는 뚜렷해지는 것 같다.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트럼프는 지난해 여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국인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더라도 자동적으로 군사개입을 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혀, 유럽 동맹국들을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트럼프가 왜 푸틴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찌라시’에 귀가 솔깃해지는 까닭이다. 이른바 ‘트럼프 엑스파일’의 내용처럼 트럼프가 푸틴한테 개인적 약점이 잡혀서 그런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찌라시는 영화 007 시리즈의 모델인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실력 있는 러시아 담당 전직 요원이 러시아에 있는 정보원들을 통해 얻은 정보를 담고 있어, 미국 정보기관들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트럼프는 물론 푸틴도 펄쩍 뛰었다. 푸틴은 “몇 년 전에 모스크바에 왔을 때 트럼프는 어떤 정치 활동가도 아니었고 우리는 그의 정치적 야망을 알지도 못했다. 그는 사업가였을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단순 사업가인 트럼프를 겨냥해 몰래 동영상을 찍었을 리 없다는 얘기다. 설득력은 떨어진다. 찌라시는 트럼프의 난잡한 성행위 동영상이 촬영된 시점을 ‘2013년’이라고 했는데, 트럼프는 2000년 개혁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적이 있다. 2012년엔 이번 대선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상표 등록했다. 1988년 5월15일 <한겨레신문> 창간호에는 트럼프의 책 광고가 실렸는데 “42세의 사업 천재, 미국의 대통령감으로 지목받는 도널드 트럼프!”라고 쓰여 있다. 트럼프는 단순 사업가가 아니었다. 푸틴의 발언은 자신과 러시아 정보기관을 ‘셀프 디스’하는 행위다. 푸틴은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이다. 냄새는 풍기는데 실체에 접근할 수 없으니, 접어두자. 다음으로는 트럼프가 고도의 전략적 구상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에 맞서는 슈퍼파워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1970년대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등이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한 외교전략을 떠올리게 한다는 얘기다. 트럼프를 만난 키신저는 “트럼프가 매우 중요한 외교 이슈를 많이 제기했다. 트럼프는 역사에 매우 중요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키신저가 트럼프의 비공식 외교정책 자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당시 소련과 중국은 국경분쟁으로 서로 몇십만명씩의 병력을 국경에 배치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간 상황이었다. 미국이 틈을 파고들 여지가 충분했지만, 지금 중국과 러시아는 그때와 같은 적대 관계가 아니다. 유럽에서 크림반도 합병, 동아시아에서 남중국해 문제로 미국과 대립하며 러시아와 중국은 오히려 가까워졌다. 트럼프가 이런 전략적 사고에서 행동하는지도 의문이다. 키신저는 트럼프가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고 평했다. 사사로운 이유에서 비롯했든 전략적 구상에서 나왔든 아니면 부동산업자의 본능이든 간에 트럼프와 푸틴의 밀월은 지구촌에 짙은 안개를 드리우고 있다. 트럼프의 시대가 열렸는지, 푸틴의 시대가 열렸는지도 모호해 보인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행운을 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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