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장 오바마가 떠나고 트럼프가 왔다. 다수결의 선거제도는 유권자 다수의 가장 간절한 결핍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물론 미국인이 선택한 리더가 과연 그 결핍을 채우기에 충분한 능력과 선한 의지를 지녔을까? 나는 회의적이지만,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비웃었던 유수의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측이 그러했듯, 내 의구심은 오류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떠나는 오바마에게 저만치 박수 치는 나라에서 다음 사람으로 트럼프를 택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마도 오바마 시대가 끝내 채우지 못했던 결핍이 트럼프를 밀어올렸으리라, 그렇게 짐작할 따름이다. 트럼프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는 취임식에서 예고대로 미국 우선주의와 일자리 회복을 천명했다. 힘겨운 하루 노동을 성실히 수행하면 내 집에서 내 가족들과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고, 주말엔 내 차를 몰고 교외 쇼핑몰을 다녀오며, 일년에 몇 차례 휴가를 떠나기도 하는 삶. 트럼프는 이를 보장했던 미국 제조업의 일자리 전성시대를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이 삶을 빼앗아간 죄를 경쟁국과 그 나라 기업, 이민자 집단에 묻겠다고 선언했다. 정치적 정당성과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유권자 다수의 긴요한 결핍과 욕망을 짚어낸 게 통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의 차기 리더는 지금 무엇을 말해야 할까? 한국 사회는 급속하게 고령화하며 성장동력을 잃고, 세대갈등은 극명해지고 있다. 고령세대는 박정희 신화를 통해 개발시대의 유산을, 자신들의 노고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다그쳐왔다. 하지만 현재 청년들이 물려받은 것은 연간 출생아 수가 절반 넘게 줄어들었는데도 원천적으로 일자리를 찾기 힘든 나라다. 한때 한국의 연간 출생아 수는 100만명 언저리를 맴돌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연 40만명 선이 붕괴하기 직전이다. 지금의 청년들(20~29살)은 연간 63만~66만명이 태어났던 세대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신규 일자리 창출능력이 연간 26만개로 전망되는 암울한 시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변변한 직장을 잡기 어렵고, 그나마도 비정규직에 열정페이를 지불해야 하는 일자리들만 널려 있다.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5억원을 돌파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외벌이로 자식을 두셋 기르며 내 집을 샀다는 부모 세대의 무용담은 머나먼 전설일 뿐이다. 그런데도 100세 시대로 접어들 기성세대는 개개인 차원은 물론 사회구조 차원에서도 청년 세대에 부양을 요구할 판이다. 일자리도 주지 않고, 자산을 획득할 기회도 주지 않았으니, 사실 청년층에 향후 부양할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회라는 얘기다. 미국은 오바마를 떠나보내며 트럼프를 선택했다. 우리는 박근혜를 떠나보내며 누구를 선택하게 될까? 나는 찬란했던 ‘성장시대의 귀환’이나 혁신의 열매가 누구에게 돌아갈지조차 불확실한 ‘4차 산업혁명 같은 돌파구’가 흔히 ‘○○절벽’‘△△절벽’ 같은 절벽들의 행렬로 표현되는 우리 시대의 결핍을 한방에 채워줄 것 같지는 않다. 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최순실 사건 단죄로, 대선 투표 한번으로 이 모든 문제들이 스르륵 풀릴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지속가능성의 회복은 세대·경제적 계급 간 이해관계 조정과 재분배라는 복잡한 함수를 작동시켜야 풀 수 있는 힘겨운 정치적 과제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앞만 보고 달려온 어느 순간, 지속가능성의 열쇠를 잃어버린 책임은 아마도 아랫세대보다는 윗세대가 좀 더 무겁게 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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