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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옥상 손님 / 김진수

등록 2017-01-11 18:14수정 2017-01-11 19:39

김진수
<한겨레21> 사진기자

‘산새처럼 살고 싶다’는 강원도 철원 지장산 자락의 도연 스님은 절을 나와 산에서 사신다. 불가에 귀의에 이어 두 번째 출가인 셈이다. 나무에 달아준 둥지에서 번식한 새들이 손자처럼 위로가 됐고, 먹이가 부족한 겨울엔 곤줄박이와 박새가 스님 책상 위 잣을 탐했다. 동고비와 흰눈썹황금새도 스님에게 날아왔다. 몸무게가 20그램에 불과한 작은 덩치지만 날기 위해선 뼛속까지 비우는 새는 스님에게 지혜의 메시지를, 번식을 마친 뒤 애써 지은 둥지도 훌훌 버리고 떠날 땐 무소유의 미덕을, 둥지에 침입한 뱀과 맞서 싸우는 어미 새의 큰 모정을 깨닫게 했다고 한다. 스님에게 새는 보살이며 도반이며 부처다.

옥상 손님 멧종다리
옥상 손님 멧종다리
단체 손님 황여새·홍여새
단체 손님 황여새·홍여새
세상 이치에 대한 깨달음에 대해 스님과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나도 몇 해 전 회사 옥상에 새를 부르고 지켜본 적이 있었다. 마포도 도심이라 새는 종류도 수도 많지는 않다. 그래도 먹이가 부족한 겨울엔 약간의 호의만으로도 야생 조류와 만나서 소통을 할 수 있다. 처음엔 공짜 먹이에 경계심을 갖던 새도 하루 이틀 지나자 먹이를 주면 날아와서 먹고, 또 먹이를 주면 먹고 갔다. 먹이를 먹으러 오는 새가 고마워 이들을 ‘옥상 손님’으로 대접했다. 참새나 박새, 진박새, 곤줄박이나, 직박구리같이 도시에서도 흔한 녀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2013년 1월8일엔 멀리서 손님이 왔다. 예상치 못했던 반가운 손님은 멧종다리. 중국 서부 산악지역이나 히말라야 기슭에서 주로 산다고 하니 먼 곳에서 온 손님이었다. 처음 온 날, 아주 추웠는데 다른 새들을 모두 물리치고 먹이를 독차지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나타나서 다른 손님을 쫓아내기도 했다. 그래도 덩치 크고 욕심 많은 까치나 직박구리와 달리 얄밉지 않았다.

단체 손님도 있었다. 그해 3월8일. 황여사와 홍여사가 단체로 찾아주셨다. 꼬리 끝에 선명한 노란색과 붉은색 띠로 구분해 황여새, 홍여새라 부르는 새였다. 월동을 마치고 무리를 지어 이동하던 중 나무가 많은 회사 근처 도심공원에서 잠시 쉬다 여기까지 날아왔나 보다. 머리에 긴 댕기와 깃털이 예쁘고 사람들이 친근하게 여겨 황여사, 홍여사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새다. 50여마리가 한꺼번에 무리 지어 나타난 새는 주변 주택가를 날아다니고 다시 회사 옥상의 텔레비전 수신 안테나에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장관을 이뤘다.

마침 이 장면을 함께 지켜본 회사 동료가 있어 으스댔다. “겨우내 옥상에서 오기를 기다렸던 손님이야.”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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